코로나 공포 키운 폐손상…'과잉 면역반응' 원인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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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 사이언스지난해 4월, 코로나19 확산세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공개한 한 검사 결과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44세 남성을 부검한 결과, 폐 안에 미세한 핏덩어리가 수천 개나 발견됐다. 시차를 두고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잇따랐다. 실제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 중 심각한 폐 손상이 나타났다는 사례가 알려지며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게 됐다.
KAIST·충북대 연구팀
지놈인사이트와 공동연구
대식세포 과잉이 염증 유발해
치료 돕는 면역억제 연구 추진
박수형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연구팀과 최영기 충북대 의과대학 교수 연구팀, 지놈인사이트가 공동 연구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폐 손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를 밝혀냈다. 코로나19 환자에게 과잉 면역반응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폐 손상을 일으킨 면역 세포가 무엇인지 규명한 최초의 연구 결과다.연구팀은 족제빗과의 포유류인 페럿을 대상으로 실험해 바이러스 감염 후 면역반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추적했다. 앞서 페럿은 최 교수 연구팀에 의해 사람과 비슷하게 코로나19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 과정에는 ‘단일세포 시퀀싱’ 방식을 활용했다. 단일세포 시퀀싱은 하나의 세포로부터 DNA를 추출해 염기서열을 파악하고 세포의 특징을 분석하는 기술이다. 이 방법으로 실험체가 감염이 진행되는 동안 폐 속 면역세포를 정밀하게 분석해 이를 여러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코로나19에 감염된 개체의 폐 안에 있는 면역세포는 대부분이 대식세포임을 발견했다.대식세포는 세포 찌꺼기, 이물질, 미생물, 암세포, 비정상적인 단백질 등 인체에 해로운 요소들을 집어삼켜서 분해하는 자체 면역세포다. 애초에 조직 내에 존재해 인체를 보호하고 있는 대식세포도 있고, 혈액에 돌아다니는 단핵구가 염증 상황에서 조직으로 이동해 대식세포로 변신한 것들도 있다.
연구 결과 폐 손상을 일으키는 대식세포는 단핵구가 변화한 대식세포란 것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실험체의 코로나19 감염 이틀 후부터 혈류에서 활성화된 단핵구가 급격하게 폐 조직으로 들어와 대식세포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혈류로 들어온 대식세포들이 염증을 일으키는 성질을 강하게 나타내 바이러스 제거뿐 아니라 조직 손상도 일으킨 것을 알아냈다.
이에 연구팀은 폐 손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선 혈류로부터 공급되는 대식세포의 과잉 공급을 억제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현재 연구팀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면역억제제를 개발하는 후행 연구에 돌입했다. 면역억제제를 투약받은 코로나19 환자의 면역반응 변화를 추적해 적절한 균형값을 찾아내는 과정이다.이 연구로 코로나19뿐만 아니라 폐 감염질환에서 급성 염증의 발생을 대식세포 변화를 통해 규명한 것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7월 28일자에 게재됐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는 국제 저명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서 발행하며 과학 전반의 주제를 다루는 학술지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감염 직후 시간에 따른 변화를 정밀하게 규명한 것이 이 연구의 가장 큰 수확”이라며 “감염 후 폐 손상이 특정 염증성 대식세포에 의한 것임을 규명해 면역억제 치료 전략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