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국민께 큰 걱정 끼쳐드려…기대·우려 잘 안다"

서울구치소 앞에서 소회

취업제한 논란에도 집무실 직행
김기남·김현석·고동진 보고받아
반도체 패권전쟁 등 현안 '산더미'
일선에서 경영 챙기겠다는 의지

文대통령 "국익을 위한 선택
국민들께서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출소한 1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삼성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13일 오전 10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안쪽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정문 인근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격앙되기 시작했다. 가석방을 지지하는 단체 회원들은 “이재용, 이재용”을 연신 외쳤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가석방 반대 측 관계자들은 비난 섞인 함성을 쏟아냈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 문을 나서 취재진을 향해 20m가량 천천히 걸었다. 당황하진 않았지만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3초가량 숨을 고르다 “우리…”라고 입을 뗐다. 곧이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걱정, 비난, 우려, 큰 기대 잘 듣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고개를 들고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미세한 떨림은 있었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그는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큰 기대 잘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경영계획과 반도체·코로나19 백신 관련 질문을 쏟아냈지만 별도의 답을 하진 않았다. 이 부회장은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EQ900 승용차에 올라 정문을 나선 지 3분여 만에 서울구치소를 빠져나갔다.

가족들이 마중을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으나 승용차에는 운전기사 외에 다른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자신 외에 가족에게 불필요한 이목이 쏠리는 것을 걱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치소 앞에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찬반을 외치는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9시 구치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가석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제발전 응원합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주세요’ 등이 적힌 현수막을 걸고 석방을 환영했다.

경영으로 바로 복귀…과감한 행보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나와 바로 향한 곳은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이었다. 취업 제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행보라는 평가다. 그만큼 일선에서 경영을 챙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날 이 부회장은 김기남 DS부문장(부회장), 김현석 CE부문장(사장), 고동진 IM부문장(사장) 등 주요 경영진을 잇따라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세계 반도체 패권 전쟁을 구치소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면회 시간이 제한돼 ‘옥중 경영’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본인이 챙겨야 할 현안의 우선순위를 이미 정해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소에 맞춰 문 대통령 입장 표명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출소 당일 가석방과 관련한 입장을 내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문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백신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걸었다”며 “문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이런 국민의 요구가 있으니 이에 부응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첫 번째 공식 행보가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관련된 일정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른 경제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도 본인이 석방된 뒤 당면한 국가적 현안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왕=이수빈·최한종 기자/박신영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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