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얼어붙은 소비심리, 하지만 주가는 또 사상 최고…이유는?

1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기분 좋게 출발했습니다. 다우 지수와 S&P 500 지수는 각각 0.24%, 0.11% 오르며 사상 최고치로 출발했습니다. 지난주 7월 고용보고서에서 신규고용이 1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오고, 지난 11일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인플레이션 꼭지론'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효과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전날 장 마감 뒤 2분기 매출과 순이익, 디즈니플러스의 구독자 증가 수가 모두 월가 예상을 웃돈 디즈니가 3% 넘게 상승하면서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달라진 건 오전 10시께였습니다. 미시간대가 발표한 소비자 심리가 예상 밖으로 급락한 것으로 발표된 것입니다. 8월 소비자태도지수 예비치는 70.2로 집계돼 월가 예상치(81.3)와 전월 확정치(81.2)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팬데믹이 터진 직후인 작년 4월 71.8도 밑돌며 2011년 12월 이후 최저치까지 갈아치웠습니다.
현재 여건 지수는 77.9로 나왔고 향후 6개월간 경기에 대한 전망을 담은 기대지수는 65.2에 그쳤습니다. 전월엔 79.0였습니다.

주가가 흔들렸을 뿐 아니라 며칠간 연 1.3% 중반대에서 안정됐던 금리(미 국채 10년물 기준)도 4bp(1bp=0.01%포인트)나 급락해 1.3%가 깨질 뻔했습니다. 이에 강세를 보여온 달러화 가치도 ICE달러인덱스 기준 92대 중반으로 물러섰으며, 국제 유가도 내림세로 전환됐습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제 회복 속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소비자들의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리처드 커틴 미시간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8월 수치의 급감은 소득과 나이, 교육 수준은 물론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관찰됐다. 델타 변이 재확산이 영향을 줬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비자들은 향후 몇 달간 경제가 부진해질 것으로 봤지만, 부정적 평가는 이례적으로 치솟았다. 팬데믹이 곧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데 따른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다만 "앞으로 몇 달 안에 소비자들은 다시 더 합리적인 기대를 표명할 것이다. 델타 변형 확산이 통제되면서 완전한 낙관론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앰허스트 피어폰트 증권의 스티븐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의 내용은 주로 델타 변이 확산에 대한 격렬한 반응(아마도 과잉 반응), 특히 팬데믹이 아마도 몇 년 동안 지속할 것이라는 분노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확산 흐름이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사라질 때면 비관론은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맞습니다. 델타 변이는 시간문제일 뿐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다 풀린 게 아닙니다. 하나 더 남았습니다. 바로 물가입니다.

미시간대 조사에서 소비자의 향후 12개월 기대 인플레이션은 4.6%로, 전월 4.7%와 비슷했습니다. 전달의 4.7%는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또 5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3.0%로 전월 2.8%보다 더 올라갔습니다.
특히 소비자들은 지금이 가전 등 내구재와 집, 자동차를 사기에 1980년대 이후 가장 나쁜 때라고 답했습니다. 집을 사기 좋은 시기라고 평가한 응답은 30%에 불과했고, 자동차는 31%, 내구재에 대해선 43%만이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워낙 가격이 뛴 탓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정말 높습니다. 제 경우만 해도 예전 살던 집의 월세가 월 3400달러였는데, 1년만인 지금 4200달러가 됐습니다. 또 자동차를 알아보니 현대차의 가장 적은 SUV 코나의 가장 낮은 등급(SE) 신차 가격이 2만4000달러 수준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작년까지 2만 달러 수준에서 살 수 있던 차입니다. 매트리스만 해도 2017년 미국에 처음 올 때 아마존에서 359달러에 샀던 매트리스가 595달러에 팔리고 있습니다. 집, 자동차, 매트리스 모두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으로 생산과 물류가 원활하지 않은 탓입니다.

공급망이 쉽게 원상복귀가 안되고 있는 가운데 델타 변이까지 다시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이런 높은 물가가 언제 수그러들 지 모릅니다. 이날 세계 최대급 물동량을 처리하는 중국 닝보 저우산항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잠정 폐쇄됐습니다. 이에 따라 화물선들이 인근 다른 항구로 향하면서 '물류 차질 도미노'가 발생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각 항구의 적체로 인해 컨테이너 운임이 40ft 하나당 1만 달러(상하이~LA)를 넘은 상황입니다. 1년 전(2000달러)보다 다섯 배 올랐는데 더 치솟을 수 있는 겁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미국은 중국을 기존 공급망에서 분리하는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이것도 비용 상승 요인입니다.

이는 이날 발표된 미국의 수출, 수입물가에서도 골고루 나타났습니다. 7월 미국의 수출가격은 전월 대비 1.3% 오르고, 전년 대비 17.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0.3% 상승하고 전년 대비 10.2% 올랐습니다. 수입물가 상승세는 지난 5, 6월 각각 1.0%, 1.1%보다 떨어진 것이지만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사실 가격이란 건 계속 올라가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엔 가격이 올라도 미국 소비자들이 물건을 샀습니다. 왜나고요? 작년 3월 팬데믹이 터진 뒤 미 정부로부터 받은 '공돈'만 1인당 3400달러에 달합니다. 또 실업자들은 주당 300~600달러의 추가 실업급여를 받았고, 자영업자들은 고용인 임금을 보전해주는 PPP론을 통해 수십만 달러씩 받은 이가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이런 게 모두 한계에 달했다는 게 오늘 미시간대 조사에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미 정부가 더 이상 공돈을 줄 것 같지 않고,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급여도 9월 초면 끊어집니다. 그런데 물가는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돈을 쓰겠다는 생각을 점점 접고 있는 것이죠.

미국 경제의 70%에 달하는 소비가 변곡점에 섰다는 뜻입니다. 이럴 경우 경기 회복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날 금리는 7bp나 급락해 1.286%로 마감됐습니다. 다시 1.2%대까지 떨어진 겁니다. 유가도 1% 가량 하락했습니다.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기업도 가격을 올리기 어렵습니다. 매출이 감소할 터이니까요. 결국, 비용상승분을 떠안게 될 것이고 마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주가는 기업 펀더멘털(마진)과 시장 밸류에이션의 조합으로 이뤄집니다. 주가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지요.
다만 현재 뉴욕 증시의 힘은 정말 강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심리 지수의 충격을 이겨내더니 결국 3대 지수 모두 상승폭이 아주 적긴 하지만 어쨌든 상승세로 장을 마쳤습니다. 다우와 나스닥은 각각 0.04% 올랐고, S&P 500지수는 0.16% 상승했습니다. 역시 사상 최고치입니다.

이날 야디니리서치의 에드 야디니 설립자가 S&P 500 지수의 목표가를 내년 말까지 5000으로 높였습니다. 골드만삭스, 크레딧스위스, UBS 등에 이어 최근 목표 주가 상향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유명한 낙관론자인 그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경기 침체나 신용 위기가 없고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낼 것이라는 게 내 근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낮은 금리입니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쉽게 올릴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골드만삭스가 대표적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연말 1.9%로 예상했던 10년물 금리를 1.6%로 낮추면서 S&P 500 지수의 목표치를 4300에서 4700으로 높였습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그만큼 주식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 펀더멘털이 나빠져도 시장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면서 주가는 유지되거나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날 블룸버그는 지난 11일 CPI가 발표된 뒤 3개월 리보 금리가 2025년에도 0.5% 미만에 머물 것이란 베팅이 유로달러 옵션 시장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재 선물시장은 리보가 2025년 1분기 1.47%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낮은 금리가 매우 오랫동안 지속할 것'이란 베팅이 늘고 있는 겁니다.
즉 Fed가 금리를 많이 올리지 않을(못할)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블룸버그는 "Fed가 2025년까지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는 시나리오"라며 "아마도 세계 경제가 팬데믹에서 회복하지 못해 중앙은행이 초완화 정책을 유지하게 됨을 의미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작년 2월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전의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1.3%대였다. 지금이 그때보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나아졌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금리가 앞으로도 크게 높아지기 어렵다는 관측이 늘고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크게 치솟지만 않는다면, Fed도 금리를 많이 올리려고 하지 않으리라고 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경기 회복이 느려져도 금리만 낮게 유지된다면 주가는 현재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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