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사용자는 원청? 하청?…엇갈린 판결에 경영계 혼란
입력
수정
지면A9
김천터미널 택배기사 파업사건택배회사는 하청업체 근로자의 사용자인가. 이에 대해 법원이 엇갈린 결정을 잇따라 내놓아 경영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경영계는 특히 문재인 정부 말기 들어 법원이 택배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판결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택배업계는 대법원마저 택배회사가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리면 택배회사가 근로조건 등을 놓고 하청업체 노조와 교섭을 벌어야 해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첫 2심 "CJ대한통운이 사용자"
하반기 2심 판결 4건 이어져
대법서 확정땐 사업존폐 위기
'하청직원 사용자는 원청'이라는
중노위 판정 인용·언급하기도
'본사, 기사 투입한 건 적법' 판결
일각선 "파업 대처수단 될 수도"
2심에서도 “CJ대한통운이 사용자”
지난 11일 택배업계가 주목한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이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에 대해 내린 판결이다. 이번 사건의 피고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천지회 조합원이자 집배점(CJ대한통운의 하청업체) 소속 택배기사들이다. 이들은 2018년 11월께 집배점주들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자 CJ대한통운 김천터미널 택배운송을 거부하는 파업에 나섰다.이에 맞서 CJ대한통운은 본사 소속 다른 지역 택배기사를 투입했다. 집배점 소속 택배기사들은 택배차량이 터미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막아섰다. 심지어 차량을 세우고 화물을 검사해 부패 우려가 있는 화물만 제외하고 차량 밖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은 과연 CJ대한통운이 이들의 사용자인지 여부였다.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파업 발생 시 ‘사업주’가 ‘사업과 관계 없는 인력’을 대체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집배점 노조는 이를 근거로 “CJ대한통운이 우리 사용자”라며 “본사 소속 타지역 기사를 투입한 위법 행위를 방해한 행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본사 타지역 기사는 김천터미널 택배 업무와 ‘관계 없는 인력’이라는 주장도 펼쳤다.이에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CJ대한통운이 사용자이고 대체인력 투입도 위법해 이를 방해한 행동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대구지법은 1심을 뒤집고 택배기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CJ대한통운을 사용자로 인정한 것은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회사가 각종 지침이나 매뉴얼을 마련해 실시간으로 업무 수행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렸으며, 각종 지표로 평가도 했다”며 “터미널 운영 방식도 회사가 결정했고 집배점주는 권한·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CJ대한통운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의미다. 다만 1심과 달리 본사 타지역 택배기사를 투입한 것은 적법하며, 차량을 막고 화물을 끌어내린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하반기 연이은 2심에 주목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인가’를 다루는 판결은 대부분의 대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사용자로 결론난다면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근로자들과 단체교섭을 벌여야 한다. 수수료와 근로조건 등을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합법적 파업까지 벌일 수 있다.이와 관련해 지난해 다섯 건의 1심 판결이 나왔다. 일부 법원은 이번 판결과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이 사용자라고 본 데 비해 다른 법원은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어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등 결론이 엇갈렸다. 그중 한 건의 2심 판결이 이번에 나왔다. 많은 대기업은 하반기에 나올 4건의 2심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이와 함께 노동위원회의 입장도 초미의 관심사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6월 “CJ대한통운이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라고 판정했다. 대구지법이 이번 2심 판결문에서 중노위 판정을 인용·언급하기도 했다. 중앙노동위는 향후 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의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2심 법원이 1심과 달리 ‘본사 소속 타지역 기사 투입’을 적법하다고 본 것에 주목한다.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이 사용자라면서도 투입된 타지역 기사가 ‘사업과 관련 있는 자’이므로 투입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될 경우 파업 발생 시 대처가 가능해 회사에 큰 손실이 발생하지 않아 노조의 파업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