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world View] 세계의 눈이 '잭슨홀 미팅'에 쏠리는 까닭

테이퍼링 논의 '파월의 입'에 주목

출구전략엔 금리 변경 기준 없어…고도의 정책적 판단 필요
유럽·日이어 내달 Fed도 디지털 통화 도입 선언할지 관심
리보 대체할 국제 기준금리, 기후 반영한 GDP 개편도 논의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2021 잭슨홀 미팅’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잭슨홀 미팅은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2013년 당시보다 훨씬 더 관심이 높다. “최종 대부자 역할까지 포기했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많이 풀렸던 무제한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즉 코로나 사태가 최악의 상황이 지나고 출구전략을 논의할 수 있을 만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美 테이퍼링 앞둔 잭슨홀선 무엇이 오갈까

최대 관심사는 단연 테이퍼링이다. 꽐꽐 쏟아지는 물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잠근다는 의미의 테이퍼링은 금리 기능을 복원시키기 위한 사전 조치다. 금융위기나 코로나 사태 직후처럼 통화정책 여건이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을 때는 돈의 양부터 줄여줘야 무력화된 금리 기능이 되살아날 수 있어서다. 오히려 금융완화만 지속하면 마약 환자에게 마약을 더 주는 꼴이기 때문에 경제 복원력마저 잃을 수 있다.궁금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4년 만에 거론된 테이퍼링이 왜 코로나 사태 때는 1년 만에 거론되기 시작하느냐 하는 점이다. 모든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 시스템 위기, 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극복해야 한다. 위기 극복 3단계 이론으로 볼 때 금융위기는 사전에 어느 정도 감지가 가능한 시스템에서 비롯돼 초기 충격이 작은 대신 위기를 낳게 한 시스템이 치유돼야 실물경기 회복이 가능해져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반면에 코로나 사태는 하이먼 민스키 이론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아무도 모르는(nobody knows) 리스크’로 초기 충격이 큰 것이 특징이다. Fed가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매입 대상을 가리지 않고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되면서 곧바로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이 제기돼 테이퍼링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테이퍼링을 추진하기 어려운 것은 ‘근원 물가상승률 2%, 실업률 3.5%에 도달하면 올린다’는 기준금리 변경 조건처럼 명확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시차도 1년 내외로 길다. 이 때문에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의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항이라 올해 잭슨홀 미팅에 참가하는 세계적인 석학과 각국 중앙은행 총재 간 열띤 토론을 통해 지식과 조언을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통화 도입…‘뉴 앱노멀’ 변화 예고

2차대전 이후 국제통화질서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올 디지털 통화(CBDC) 논의도 테이퍼링 이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작년 5월에 도입됐던 디지털 위안화가 의외로 빨리 정착됨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도 각각 디지털 유로화와 디지털 엔화를 도입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국가의 90%가 디지털 통화 도입을 확정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온적인 태도로 느긋한 입장을 보였던 Fed도 다음달에는 디지털 달러화 도입 방침을 밝힐 예정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디지털 콘택트 추세가 진전됨에 따라 다자간 디지털 통상협상 논의가 고개를 드는 움직임과 맞물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2차대전 직후 무역 분야에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통화 분야에서 ‘IMF(국제통화기금)’ 간 양대 체제가 출범한 것과 비슷하다.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도입할 경우 통화정책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서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뉴 앱노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통화와 어떻게 관계(스테이블 코인 문제)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암호화폐 가격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 암호화폐 관련자가 유독 많이 참가를 신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리보 대체 금리·GDP 개편 논의도 주목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올해 말’로 지정해 놓은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리보(Libor·런던 시중은행 간 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기준금리를 정하는 의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2차대전 이후 국제기채시장에서 기준금리 역할을 담당해온 리보는 뉴 밀레니엄 시대 이후 각종 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신뢰가 땅에 추락했다. 5년 전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이후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과 기능도 크게 약화됐다.

Fed 주도로 리보를 대신할 국제기준금리로 검토해온 것이 ‘담보부 조달금리(SOFR)’다. 코로나 사태 이후 디지털 콘택트의 진전으로 로버트 먼델의 최적통화지역이 전 세계로 확장된 점을 감안하면 국제기준금리가 교체될 경우 각국 기준금리도 변경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 간 협조 체제도 잘 가동돼야 한다. Fed는 SOFR 도입에 맞춰 현재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를 ‘익일 환매금리(on RRP)’로 교체할 방침이다.

Fed와 EC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차기 금융위기가 종전처럼 시스템보다는 기후변화로부터 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1년 반 이상 동안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기후변화 위기의 첫 사례다. 올해 북미 지역은 폭염, 중남미 지역은 대가뭄, 아시아 지역은 태풍, 유럽 지역은 대홍수, 아프리카 지역은 사막화, 오세아니아 지역은 강한 바람에 편승한 쥐떼 등으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도 개편해야 한다. 최종 부가가치의 합인 GDP는 탄소배출 등이 얼마인가를 파악할 수 있는 생산 공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총생산(GO: gross output) 도입 방안을 놓고 깊이 있는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GO로 개편된다면 1937년 대공황 당시 사이먼 쿠즈네츠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개발한 국민소득 개념이 대체되는 가장 큰 변화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는 델타 변이 등으로 경기가 재둔화될 경우 통화정책 면에서 테이퍼링이 연기되겠지만 재정의 역할이 보다 촉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 면에서 남아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금리 기능을 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인 ‘실효 하한(ELB: effective lower bound)’을 도입하고 있는 Fed로서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마이너스 금리제를 먼저 도입한 ECB, BOJ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IMF의 기능 재편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경제력 격차가 더 벌어지는 이른바 ‘K자형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특별인출권(SDR)을 풀기로 했다. 회원국별 쿼터와 경제력 간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최후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건에 맞춰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디지털 시대, 중앙은행 역할은
'물가 안정' 목표 수정 불가피'통화정책 수행' 최대 난제로

디지털 시대에 통화정책과 달러 가치는 어떻게 될까?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되면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 최대 난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엔 중앙은행의 목표를 전통적인 ‘물가 안정’에만 둘 수 없다는 점이다.

첫째, 본원통화의 대체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 통화로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으로선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발행차익(시뇨리지·seigniorage) 감소를 의미한다. 화폐발행차익 감소는 통화정책 수행비용의 재정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디지털 통화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주체들이 디지털 통화를 발행할 경우 현금 보유 성향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통화 발달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커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승수는 현금보유비율과 지급준비율에 따라 좌우된다. 이 이론대로라면 디지털 통화가 현금통화를 대체하면 통화승수는 커진다.

넷째, 디지털 통화의 발달은 여러 측면에서 통화정책의 전달 경로(통화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실물경기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통화 발달로 모든 금융 거래에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

다섯째,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선도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해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유사 금융행위가 판치게 돼 화폐개혁 논의도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여섯째, 디지털 통화 시대에 달러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달러 가치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시뇨리지’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금융위기 이후 시스템이 없는(non system) 국제통화질서에 자급자족적인 디지털 통화 시대가 들어설 경우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축통화를 놓고 벌어질 환율 전쟁이다. 디지털 달러화가 가장 늦게 도입되면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앞으로 정착될 ‘디지털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간 2차원적인 기축통화 전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