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콘서트인 줄"…'이건희 컬렉션'에 벌어진 놀라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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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전시인데 15만원짜리 암표까지 등장“예매 시작하자마자 바로 전부 마감돼서 취소 표만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탄콘(방탄소년단 콘서트) 예매를 방불케 하네요.”
“이번주 토요일 오후 4시 이후 표 두 장 15만원에 삽니다.”
인기 가수의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 티켓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미술 전시회 티켓 예매를 놓고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이 놀랍다. 지난달 21일부터 동시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얘기다.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전시의 인기가 개막 한 달을 맞았는데도 여전히 뜨겁다.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건 물론이고, '광클'(빠르게 클릭) 경쟁이 벌어지면서 매일 예매 시작 30초만에 예약이 마감될 정도다. 전시 관람이 무료인데도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암표'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8월 표 이미 매진..."표 더 달라" 아우성
18일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이건희컬렉션 전시 예매는 오는 8월 말까지 모두 마감됐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회차당 관람인원이 30명으로 제한돼 있는데, 이 때문에 예매 경쟁이 극도로 치열하다는 설명이다. 주말은 물론 평일 예약마저도 수십초만에 예약분(화·목·금·일 8회차 240명, 수·토 11회차 330명)이 꽉 차는 일이 속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도 마찬가지다. 9월 12일까지 관람분 예매가 이미 모두 마감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시간당 관람인원은 20명이다.'광클 경쟁'은 인기 가수 콘서트 예매와 대학 수강신청, 코로나19 백신 예약 등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하다. 비교적 관심도 덜한 데다 장기간 열리는 미술 전시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예약 비법을 소개하는 글과 후기가 여럿 올라와 있다. 회원가입을 미리 해두고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함께 접속하는 건 기본. 예매 개시 직후보다는 10여분 뒤 취소표를 찾아보거나 아예 당일 취소표를 노리라는 조언도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버 다운을 막기 위해 2주치 예약분을 모아 예매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꿨다.경쟁이 이렇게까지 치열해진 건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전시 수준과 코로나19로 인한 관람객 제한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국보와 보물 28건을 등 45건 77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중섭과 박수근, 김환기를 비롯한 한국 근대미술 거장 34명의 대표작 58점을 만날 수 있다.
암표까지 등장...국립현대미술관 "제재 검토"
인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관람료가 무료인데도 암표까지 생겨났다. 포털 중고 거래 커뮤니티 등을 보면 주말 표는 인당 3만~8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단순한 호가가 아니라 실제 거래되는 가격 기준이다. 판매한다는 글보다 구매를 원한다는 글이 훨씬 많다는 점에서 전시 인기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다.암표를 구매하려는 이들은 주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특히 아이와 함께 전시를 보고 싶다는 부모들이 많다. 최근 5만원에 암표 한 장을 구매해 아이와 함께 전시를 관람했다는 A씨는 "예매 경쟁이 너무 치열해 표 한 장을 예매하기도 벅차다"며 "같은 시간대에 여러 장을 예매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암표를 구하려다 실패했다는 B씨는 "3만원에 표 한 장을 산다는 글을 올렸는데 연락이 오지 않더라"며 "암표상들조차 예매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표상을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비매품인 관람권은 현금으로 교환하거나 유통할 수 없고, 적발시 예약취소와 이용에 불이익을 준다는 방침"이라며 "중고 거래 사이트 등에 이 같은 거래를 중지해달라고 협조 요청을 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와 별도로 예약기록상에 일정 횟수 이상 예약취소를 반복시 예약금지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일각에서는 미술 전시에 적용되는 방역 수칙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매 경쟁에 익숙치 않은 중노년층 관객들은 사실상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전시회에서는 관객들이 대체로 한 방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지키기가 쉽고, 격렬한 활동도 하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과 마주보며 대화를 하는 상황이 극히 드문데 방역조치가 지나치게 가혹한 점이 없지 않다"며 "현재 대유행 상황에선 어렵지만 추후에는 미술 전시에 대한 방역 수칙 완화를 검토해볼만 하다"고 제안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