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시간째 집에만 있다"…아프간 여성 기자의 절규

아프간 여성 기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
"탈레반의 말과 행동은 결코 같지 않아"
"자율성 잃는다면 죽은 것과 다름 없어"
18일(현지시간) 탈레반 조직원이 검은색 스프레이로 가려진 미용샵 외벽의 여성 사진을 지나가고 있다./사진=AFP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후) 약 60시간 동안 집을 떠나지 못했다."

1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기자 마리암 나바비는 자신과 같은 아프간 여성들의 처지를 알리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했다.나바비는 '탈레반의 나라'가 된 조국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듯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현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라며 "탈레반 정권의 공포는 가족들의 이야기나 책 속에서만 존재했으나 이제는 그들이 우리의 정부가 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나의 미래는 다시 쓰여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나바비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던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도 전했다. 그는 "일요일(15일) 탈레반이 카불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사무실에 있었다"며 "나와 동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사무실이 습격 당할 경우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계정을 빠르게 폐쇄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집으로 도피하는 동안 부분적으로 차단된 카불의 도로는 종말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며 "긴급 상황에 버려진 여성 신발들이 도로를 어지럽혔다"고 돌이켰다.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탈레반의 '응징'이었다. 나바비는 여성 인권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다. 과거 여성 인권 침해를 일삼았던 탈레반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바비는 "그래서 여기, 나는 죄수처럼 앉아있다"며 "내가 탈레반에 맞서는 수백 건의 보고서를 작성한 여성 기자라는 것을 탈레반이 알아내면 그들이 내게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나바비는 "내가 기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사진을 없앴다"며 "올해의 기자로 선정된 후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메달은 묻었다"고 덧붙였다. 가니 전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에 들이닥치자 국외로 도피한 인물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에 머물고 있는 그가 챙긴 현금은 2000억원에 달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 시위자가 부르카(전신을 가리는 베일)를 착용한 채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사진=EPA
특히 나바비는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탈레반에 강한 의구심을 표했다. "탈레반은 전신 베일(부르카)을 착용하면 출근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그들은 서부 아프간 도시 헤라트를 점령한 후 여성 학생들과 교수들이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면서다.또 "카불은 현재 일주일간의 여름방학이기 때문에 학교와 대학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탈레반이 지금 무엇을 결정할지, 일주일 후에는 무엇을 결정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처럼 오래 일해왔고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여성들을 죽이지 않는다 해도 강제로 집에 머물고 자율성을 잃는다면 독립을 잃는다면 우리는 죽은 셈"이라고 절망했다.

나바비는 아프간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구했다. 그는 "아프간 여성들이 내 가족 이야기의 어두운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위급한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모든 국가에 힘써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통제 아래서 고통받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나바비는 "그들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며 글을 끝맺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