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代째 미술사랑…달항아리 빌딩에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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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사랑한 미술관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서울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을 나서면 하얀 달항아리를 닮은 커다란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017년 10월 완공된 아모레퍼시픽그룹 신사옥이다. 건물을 설계한 영국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형상보다는 달항아리가 가진 절제된 아름다움의 본질을 건축 디자인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건물에서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서성환·서경배 회장 컬렉션
조선 백자·팝아트 'LOVE'…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
시공간 아우른 걸작들 담겨
○2대에 걸친 수집품, 미술관이 되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APMA)은 이 건물 1층과 지하 1층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의 뿌리는 창업주 고(故) 서성환 회장이 문을 연 태평양박물관이다. 서성환 회장은 10여 년의 준비 끝에 1979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장신구 박물관인 태평양화장사관을 열었고, 1981년에는 다예관(茶藝館)을 개관했다. 박물관은 이후 태평양박물관, 디아모레뮤지엄 등으로 변천을 거듭하다가 2018년 용산 신사옥에 APMA라는 이름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미술문화 발전을 돕고 사회에 공헌하는 게 APMA의 목표다.고 서성환 회장은 공예품과 도자기 등 고미술품을 주로 모았다. 아들 서경배 회장은 대를 이어 동서양 현대미술품을 두루 수집했다. 고미술품을 수집했던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컬렉션’을 완성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2대에 걸쳐 모은 컬렉션 덕분에 APMA 소장품의 폭과 깊이는 남다르다. 조선시대 달항아리인 백자대호(보물 제1441호)와 고려시대 불화 ‘수월관음도’(보물 제1426호)에서부터 로버트 인디애나의 팝아트 작품 ‘LOVE’까지 시공간을 아우르는 걸작들이 포함됐다. 신사옥에 딸린 공공미술 작품도 유명 작가의 작품이다.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사옥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Overdeeping’이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반원형의 고리가 거울과 물에 반사된 모습이 서로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각과 지각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담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건물 1층의 미술관 로비와 뮤지엄숍 등 미술관 부대시설을 거쳐 지하 1층으로 들어서면 전시실이 나온다. 7개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실 중 여섯 곳에서 열리고 있는 소장품 특별전 ‘APMA, 챕터3’가 막바지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지난 1월 타계한 김창열 화백의 특별전을 만나볼 수 있다.
○동시대 현대미술 흐름 보여주는 전시 돋보여
오는 22일까지 열리는 APMA의 이번 소장품 특별전에서는 국내외 작가 40여 명의 작품 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국내외 생존 작가들의 작품이다. 국내 미술관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 대부분이 타계한 거장들의 작품 위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선함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그 덕분에 반응도 뜨겁다. 전시 기간 인스타그램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3000건을 넘어섰다.전시를 대표하는 작품은 미국 현대미술가 스털링 루비(49)의 ‘창문. 솜사탕’이다. 작가가 물감과 판지, 천 등을 결합해 만들어낸 가로 2.5m, 높이 3.3m 크기의 창문 모양 대작이다. 다양한 색의 물감과 작가 작업실에서 나온 폐기물 파편들이 뒤얽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전시장에서 가장 큰 벽면을 독차지한 애덤 팬들턴(37)의 대표작 ‘나의 구성요소들’ 연작 45점도 눈길을 끈다. 아프리카 전통 조각과 역사적 사진, 마스크 이미지 등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흑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들이다.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이불(57)의 ‘스턴바우 №29’를 비롯해 메리 코스(76)의 대작 ‘무제(내면의 흰색 띠들)’, 윌리엄 켄트리지(66)의 영상작품 ‘쾅!’ 등 21세기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여러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APMA는 다음 전시로 오는 10월 미국 작가 메리 코스(76)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APMA 관계자는 “메리 코스는 찰나의 빛을 회화에 담는 작가”라며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60여 년간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를 것”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