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처럼 또 기립표결…결국 언론에 '재갈' 물리는 與

野 반발 속 상임위 통과

찔끔 수정하고 '독소조항' 그대로
5배 손배 등 곳곳에 위헌 소지
가짜뉴스 퇴출한다는 명분으로
대선 앞두고 정부 비판 사전봉쇄
< 野 “현대판 분서갱유 중단하라”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1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9일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처음 논의한 지 6개월, 이날 통과한 법안(위원장 안)의 기틀이 된 김용민 의원안이 상임위에 올라간 지 불과 1개월여 만이다.

국민의힘은 “현대판 분서갱유”라며 강력 반발했고 학계와 언론계에서도 “언론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것”이라는 규탄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여당이 언론개혁을 빌미로 선거 전 지지층을 규합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냐” 野 반발 속 일방 처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은 개정안을 처리하려는 민주당과 이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며 아수라장이 됐다. 민주당 소속인 도종환 문체위원장이 표결을 시도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위원장석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했다. 문체위원이 아닌 국민의힘 의원들도 회의장 안으로 들어와 “지금 뭐하시는 거냐” “여기가 북한인가”라고 따졌다. “가만히 있어” “네가 뭔데” 등 고성도 오갔다. 야당 의원들이 끝까지 항의했지만 민주당은 회의 시작 2시간여 만에 재석 위원 16명 중 9명(찬성)의 ‘기립 표결’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언론사에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야당과 언론·시민사회계에서 언론재갈법이라며 반발해온 법안이다.여야 합의에 따라 문체위원장 자리가 곧 야당 몫으로 바뀌면서 이달 처리가 급해진 민주당 지도부가 문체위원들에게 강행 처리를 지시했다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민주당 의원은 법안 통과 후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 의원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했다고 맞받았다. 한병도 의원은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난입해 마이크를 잡아당기고 회의를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마이크가 파손됐다”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찔끔’ 수정했다지만 독소조항 여전

법의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은 허위·조작보도 시 언론사가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허위’ ‘조작’이라는 개념부터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이미 명예훼손을 형사 범죄로 처벌하는 법을 두고 있어 이중 처벌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의·과실에 대한 추정 권한을 법원에 준 것도 ‘피해자 입증책임’ 원칙에 반한다.

피소 사실 자체가 또 다른 기사가 돼 이미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의제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개정안을 처음 발의한 이상직 의원은 ‘500억원 횡령·배임 의혹’ 보도에 ‘가짜뉴스’라고 펄펄 뛰었지만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권을 향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에 재갈을 물린 것”이라며 “현대판 분서갱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법대로라면 최순실(본명 최서원)도 (언론을) 피해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야당은 물론 학계·언론계에서도 문제를 지적하자 민주당은 일부 조항을 수정했다. 하지만 이 또한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 독소조항은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관훈클럽 등 국내 언론 7개 단체는 “언론에 재갈을 물린 위헌적 입법 폭거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 언론단체인 세계신문협회(WAN)도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한국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지지층 규합 목적” 분석도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속도전에 나선 배경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규합하겠다는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여권 인물들이 언론의 가짜뉴스에 피해를 입었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들을 의식한 입법이라는 분석이다. 재보선 참패로 검찰개혁이 사실상 좌초한 상황에서 지지층을 달래기 위해서는 언론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은 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일종의 ‘언론 트라우마’도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언론중재법을 향한 비판에도 줄곧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이날 침묵을 깨고 민주당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냈다. 청와대는 이날 언론중재법 처리에 대해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가짜뉴스가 많이 생산되는 뉴미디어는 그대로 두고 신문·방송 등 전통 미디어를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역풍이 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강행한 임대차 3법의 결과처럼 언론중재법 개악 강행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후퇴라는 역풍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