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워싱’도 소송 대상…커지는 ESG 법률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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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ESG 공시가 의무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ESG와 관련한 법정 소송 리스크가 제기되고 있다. 로펌들은 앞다퉈 ESG 팀을 만들어 대비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과 관련해 소송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한경ESG] 이슈 브리핑 지난 3월 미국의 환경단체가 에너지 기업 쉐브론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고발했다. 쉐브론의 생산 계획에 따르면, 향후 배출가스 절대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도 ‘항상 더 깨끗한 에너지(ever-cleaner energy)’라는 약속을 내세우는 것이 그린워싱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환경단체가 그린워싱을 이유로 기업을 FTC에 고발한 최초의 사례다.ESG 법률 리스크가 기업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가 의무화된다.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의 ESG 관련 모니터링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규제 강화
법무법인 율촌의 윤용희 변호사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ESG소송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다. 해외 ESG 소송은 △제품 표시나 공시 자료에 기재된 ESG 정보의 오류 또는 누락을 이유로 한 소송 △불성실 공시에 따른 소송 △ESG 요소 관련 기업의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 등을 이유로 한 소송 등이 있다. 이 중 첫 번째·세 번째 유형은 소비자나 시민단체가 원고가 되고, 두 번째 유형은 투자자가 원고가 될 수 있다.미국 FTC는 ‘FTC 그린 가이드’를 내고 합리적 소비자가 오인할 만한 표시 및 누락 행위는 ‘기만적인(deceptive)’ 것으로 규정했다. 지난 2010년 소비자들이 회사 자체 지표인데도 자사 유리세정제와 얼룩제거제에 ‘그린리스트(greenlist)’ 재료라고 표시해 녹색 인증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게 했다며 S.C. 존슨앤드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공시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 증권선물위원회(SEC)는 ESG 자율 공시를 할 때 증권 거래와 관련해 중요한 사실을 누락하거나 허위 기재 행위를 금지한다. 2018년 액슨모빌은 기후변화가 사업에 미치는 재정적 영향을 계산하기 위한 프록시 코스트(proxy cost)를 지나치게 낮게 잡아 산정 수치를 왜곡하고 대중과 투자자를 오도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인권·환경 침해 등 불법행위에 따른 소송은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붕괴 사건 사망자의 유가족이 대리인을 내세워 J.C. 페니를 상대로 낸 소송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직접적 고용주가 아니더라도 인권 관련법 위반 사실을 알면서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면 법 적용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또 환경단체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아동 등을 사망 또는 중상해에 이르게 한 광산 사업을 사주했다는 이유로 애플과 테슬라에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도 환경과 산업안전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강력한 형사처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업무와 관련한 사망이나 부상, 질병이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와 제조물이나 이용 시설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 결함으로 발생하는 중대시민재해 등이 적용 대상이다.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든 기업도 있다. 2013년 어도비는 사이버 공격을 받아 수백만 고객의 계정 해킹 사건이 발생해 고객의 신뢰가 무너졌다. 이후 어도비는 개인정보 보호와 지배구조 개선, 이산화탄소 감축, 인적자원 관리 등 대대적인 혁신을 이끌었다. ESG 관련 리더직을 신설하고 이사회를 확대 개편했으며, 직원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5% 감축했다. 공급업체에는 노동 및 환경 기준의 준수를 요구하고, 이를 위반하면 계약을 해지하며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했다. 남녀 임직원 간 급여 등 보상의 형평성과 기회의 형평성도 강화하면서 ESG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인터뷰]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SG 공시 의무화 이후 소송 늘어날 것”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사법과 금융법, M&A 분야의 권위자다. 로펌에서 오랜 시간 M&A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해 실무 감각도 뛰어나다. 그는 ESG 소송과 관련해 주의해야 하지만, 아직 서둘러 접근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 ESG 소송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리스크가 대부분 실현되지 않아 아직은 조금 먼 고민으로 보인다. ESG 소송이란 기본적으로 사법당국이나 정부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제기하는 것이다. 단순한 과대광고나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사례를 ESG 소송이라고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 아직은 ESG와 관련한 해외 소송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 향후 ESG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나.
“우선 투자자와 펀드 운용사 간 투자 관련 소송이 있을 수 있다. 자산운용사가 ESG 펀드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ESG 평가가 높은 곳에만 투자하는 게 아닌 경우다. 또 국내에는 아직 출시 전인데, 지속가능연계채권(SBL) 발행 사례가 생길 수 있다. 투자자에게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조달한 자금을 약속한 데 쓰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두 번째는 주주와 회사 간 분쟁이다. 상장회사는 사업보고서를 내는데,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사업보고서에 쓰는 것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발간하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쓰는 것은 법률적 내용이 다르다. 전자는 자본시장법 위반이지만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ESG 공시가 점차 의무화되고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의무 공시 영역으로 넘어가면 왜 약속한 대로 안 하는지 보고서 부실 기재와 관련해 문제가 될 수 있다.”
- 공급망 이슈도 있을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이 바로 공급망 이슈다. ESG 관련 위반으로 공급업체에서 탈락할 경우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해외 공장의 인권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환경단체나 인권단체 등이 고발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 컴플라이언스 관련 소송과 ESG 소송의 차이는. “ESG 소송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원래 회사가 컴플라이언스 측면에서 해오던 것들이 상당수다. 다만 기업이, 특히 환경 관련 이슈는 대비를 더 잘해야 한다. 기존 컴플라이언스 체계에 조금 더 추가해야 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