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진흙탕 싸움' 된 WCP CB 인수전 [마켓인사이트]

서울중앙법원 "CB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이베스트조합 "우리 계약이 유효하다는 것"
산은 "이미 WCP 우선매수권 이행 통보해"
양측 주장 건건이 서로 달라 '진흙탕 싸움'
≪이 기사는 08월19일(15:4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KDB산업은행과의 계약이 종결되지 않아 계약 이행을 위한 통상적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다." (이베스트-BEV신기술조합 관계자)"이미 WCP의 우선매수권 행사에 따라 전환사채(CB)를 넘겼다고 이베스트조합측에 공문을 보냈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다."(KDB산업은행 관계자)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전문업체 WCP(더블유씨피)의 전환사채(CB) 매매를 놓고 KDB산업은행(산은)과 이베스트-BEV신기술조합(이베스트조합)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앞서 산은이 보유한 WCP의 CB 800억원어치를 인수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던 이베스트조합은 이 CB의 우선매수권을 가진 WCP의 권리 행사로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CB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 결과 법원으로부터 가처분 신청 인용을 받았다며 산은이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이베스트조합측은 19일 "재판부가 산은이 전환사채의 양도, 질권설정 등 일체의 처분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 것"이라며 "현재 산은과 우리 조합과의 계약 효력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산은측은 "8월5일에 구두로 우선매수권에 따라 CB 매각이 완료됐다는 통보를 했고 11일에 이메일로 공문을 보내 이베스트조합측도 메일을 확인했다"며 "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베스트조합측은 "산은으로부터 전환사채 실물 양도에 관한 명확한 답변을 공문으로 회신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달 9일에 가처분 신청을 했고 11일에 이메일을 받았는데 내용도 이상하다"는 게 이베스트조합측 입장이다. 조합측 관계자는 "통상 채권 양도를 했으면 양도를 완료했다고 공문을 보내면 되는데 산은이 보낸 공문에는 '(WCP의 우선매수권 제3자배정을 받은)키움캐피탈조합이 거래종결 사실을 이베스트조합에 통보했다고 들었다. 산은은 키움캐피탈과 매매종결했다'고 애매하게 적혀있다"고 주장했다. CB 실물 양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전달받지 못해 9일에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고 메일을 받은 건 11일이라는 얘기다.

또 산은측은 이베스트조합이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 신청의 내용과 그 결과 통보 사실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산은 관계자는 "통상적 가처분 신청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신청인의 소명만 듣고 결정할 수 있다"며 "매매가 종결된 상황이기 때문에 가처분 대상이 되지 않는데 우리측 입장을 들을 필요가 없는 통상적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보통 가처분 신청 결과는 15일 동안 대외공개를 하지 않는데 재판부도 공개하지 않은 사실을 이베스트조합측이 보도자료로 뿌린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문의해 정식 결정문을 받아본 뒤 가처분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번 논란의 핵심은 산은과 이베스트조합과의 계약서 이행보다 WCP의 우선매수권이 우선하는지다. 이에 대해 양측이 확연히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달 초 이베스트조합측은 "WCP의 우선매수권 행사보다 이베스트조합의 매수계약서가 선행한다는 조건의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이베스트조합은 산은에 계약금을 납부하고 같은 달 29일 잔금을 지급키로 했는데,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산은으로부터 WCP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키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선매수권이란 매도인이 제3자에게 자산을 매각하기 전 그와 같은 조건으로 우선해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WCP가 가진 우선권이기 때문에 산은-이베스트조합의 계약과 무관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산은과 WCP측의 설명이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우선매수권 행사 방식 중 상대측(이베스트조합)과 같은 조건으로 행사할지를 물어보는 방식이었고 이는 매우 일반적"이라며 "계약효력이 상실했다는 걸 이베스트조합에 통보했지만 계약금을 돌려받을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의 세계, 돈의 생리는 냉정하다는 게 이번 일의 교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핵심은 WCP가 내년 상반기 중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는 데 있다. 현재 WCP의 CB를 우선 확보해두면 IPO 이후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3~4배까지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투자은행(IB)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WCP의 CB를 서로 매수하겠다고 싸우는 이유다.

'팩트'는 하나인데 양측의 주장이 180도 엇갈리면서 장기전으로 치닫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산은은 WCP의 CB를 넘겼다고 했지만 이베스트조합측은 법원의 가처분 인용 처분도 나와 계약이 아직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