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할인만 치열하던 탈모 샴푸 시장에서 승자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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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 「케이스스터디」과거 탈모라는 단어는 ‘배 나온 중년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탈모로 마음고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LG생활건강, ‘시각의 전환’ 마케팅
소비자가 진짜 듣고 싶은 언어로 접근
VIP회원과 신제품을 공동 개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 진료를 받은 환자는 23만4780명. 이 중 2030 환자가 10만2812명으로 43.8%를 차지했다. 유전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취업 고민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탈모’가 크게 늘어난 결과라는 분석이다.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자 화장품·생활용품업체들은 앞다퉈 2030세대를 위한 제품 개발에 나섰다. 40대 이상 소비자를 타깃으로 설정한 기존 탈모 전용 제품으로는 젊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브랜드 콘셉트부터 제품의 향과 질감, 마케팅 방식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한 새로운 탈모 전용 제품을 내놓기 위해 각 업체들은 전사적 역량을 기울였다.
각 사의 치열한 ‘탈모 샴푸 전쟁’의 승자는 LG생활건강의 ‘닥터그루트’. 2017년 선보인 이 브랜드는 출시 4년여 만에 누적 판매량 1300만 개를 돌파하며 탈모 샴푸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닥터그루트는 어떻게 까다로운 2030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상황 1 탈모 샴푸=한방 샴푸?
도전 1 탈모 샴푸에 명품의 향기를 담다
LG생활건강이 탈모 샴푸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첫 걸음은 시장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즉 불만사항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기존 탈모 샴푸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문제는 냄새였다. ‘아빠 스킨 냄새가 난다’ ‘한방향이 너무 강하다’ 등이 소비자의 공통된 불만이었다. LG생활건강이 닥터그루트를 선보이며 냄새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게 된 이유다.닥터그루트 ‘애딕트’ 라인은 120년 전통의 명품 향료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은 천연 아로마블렌딩을 함유해 고급스러운 명품 향수의 향기를 구현했다.
한방 제품 일색이던 기존 탈모 샴푸 시장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품 디자인도 차별화했다. 명품 향수의 간결하지만 묵직한 느낌을 살려 세련된 디자인의 사각용기에 샴푸를 담았다. 욕실 인테리어까지 신경 쓰는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이다.
마케팅 용어도 소비자 눈높이에 맞췄다. 어렵고 긴 추상적인 설명 대신 소비자가 진짜 듣고 싶은 언어로 접근했다.
예를 들어 ‘정수리 냄새’, ‘사춘기 냄새’ 등 차마 말할 수 없지만 누구나 가질 법한 두피 고민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탈모 샴푸 특유의 냄새로 사용을 꺼리던 2030 소비자의 마음뿐 아니라 정수리 냄새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상황 2 백인백색 탈모 고민
도전 2 맞춤형 솔루션 제공
탈모라는 단어 두 글자 뒤에는 수 백, 수 만가지 원인과 증상이 있다. 유전적인 요인부터 스트레스, 피부질환으로 시작된 탈모는 끊어져서 빠지는 모발, 힘없이 푹 주저앉는 모발, 떡지고 기름진 두피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탈모는 ‘백인백색(百人百色)’의 질환이라는 말까지 있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증상과 원인으로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닥터그루트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제품의 기능적 차원에서도 맞춤형 제품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마케팅 차원에서도 맞춤형 솔루션이 필요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탈모로 고민하는 다양한 소비자를 인터뷰한 결과 소비자들마다 다른 원인으로 탈모를 앓고, 다른 증상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며 “이 같은 소비자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선 맞춤형 제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닥터그루트의 샴푸·트리트먼트를 ‘힘없는 모발용’ ‘지성 두피용’ ‘손상 모발용’ 등으로 세분화했다. 소비자 인터뷰를 기반으로 소비군을 크게 세 개로 나눠 공통된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도록 개발한 맞춤형 제품이다.
소비자에게 딱 맞는 제품을 선보이자 무엇보다 재구매율이 높아졌다. 닥터그루트는 3년 연속 탈모 샴푸 시장에서 재구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상황 3 코로나19 악재
도전 3 온라인 직영몰로 한 발 빠른 대응
LG생활건강은 2019년 11월 닥터그루트 온라인 직영몰을 열었다. 국내에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하기 석 달 전이다. LG생활건강이 온라인 판매에 발 빠르게 나선 이유는 오프라인 유통채널로는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판매채널에서 제조사는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 공급할 뿐 어떤 소비자가 왜 자신의 상품을 구매했는지 등의 소비자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LG생활건강이 직영몰 운영을 결정한 이유는 이 같은 데이터를 수집해 보다 능동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기 위해서다.
실제 LG생활건강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와 직영몰 등을 통해 파악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는 제품, 실제 구매하는 제품 등을 분석해 실시간으로 맞춤형 광고와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퍼모먼스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또 직영몰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이벤트를 운영해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였다. VIP회원과 신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등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직접 소통 체계도 구축했다.
비대면 소비 트렌드 전환에 한 발 빨리 대응한 덕에 닥터그루트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9년 전체 매출의 30% 수준에서 올 1분기 60%까지 늘어났다. 닥터그루트 온라인 직영몰은 문을 연 지 2년여 만에 회원수 30만 명을 돌파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탈모 샴푸 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었다. 기능성 한방 샴푸가 인기를 끌자 너도 나도 ‘미투 제품’을 들고 나왔다.차별점이 없으니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법은 ‘가격 할인’뿐이었다. 대형마트에서 매일 탈모 샴푸 할인 경쟁이 펼쳐진 이유다.
LG생활건강은 치열한 시장을 공략할 때 다른 방법을 택했다. 똑같은 제품을 내놓고 가격 할인을 벌이는 대신 다른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남다른 제품을 위해선 시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탈모 샴푸의 소비층을 40대 이상에 2030으로 확대하고, 기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한약 냄새를 넣는 대신 젊고 세련된 향을 담았다.
LG생활건강의 마케팅 성공 포인트는 ‘시각의 전환’으로 요약된다. 시각의 전환은 결과를 놓고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제조사 입장에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모두가 같은 길로 걸어가는 상황에서 자신만 다른 길을 택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콤하다.
LG생활건강 ‘시각의 전환’을 강조한 차석용 부회장이 2005년 1분기 취임한 이후 한 분기를 제외하고 65분기 동안 영업이익이 늘어났다.
박종관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시장이 성숙해지면 마케터들은 경쟁사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제조사라면 경쟁사보다 더 빠른 모델, 더 혁신적인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한다.
경쟁사보다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케팅 철학 측면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을 “제품 중심 콘셉트(product concept)”라고 한다.
그런데, 지나친 제품 중심 사고는 자칫 “더 좋은 쥐덫(a better mousetrap)”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쥐를 잡기 위해 네모난 형태의 쥐덫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시장에서 쥐덫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나면, 경쟁자들은 이제 좀 더 좋은 쥐덫을 만들기 위해 경쟁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은 현재의 제품보다 더 작은 크기의 쥐덫을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기업은 같은 형태의 쥐덫이지만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더 작거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더 좋은 품질의 쥐덫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기업의 공통점은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네모난 형태의 쥐덫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정말 더 좋은 품질의 쥐덫일까? 그렇지 않다. 소비자들은 어쨌든 쥐를 잘 잡는 해결 방법을 원할 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혁신적인 쥐약을 내놓을 수 있다. 심지어 쥐를 잡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단순한 해결책까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쥐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쥐약이 개발되는 순간, 더 작은 쥐덫만 쫓던 기업은 하루 아침에 망할 수 있다. 기존의 제품에만 집중하다가 새로운 해결책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마케팅 근시안(marketing myopia)”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마케터는 더 좋은 품질의 제품보다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더 좋은 solution’이 무엇일까에 집중해야 한다.
LG생활건강 닥터그루트의 성공 역시 ‘제품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마케팅 콘셉트’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전형적인 기능성 한방 샴푸는 일종의 쥐덫이었다. 경쟁자들은 더 좋은 쥐덫을 만들기 위해, 즉 더 새롭고 좋은 한방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특히 젊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탈모샴푸의 해결책이 아니었다. LG생활건강은 소비자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 세대의 문제를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향을 갖춘 맞춤형 제품으로 해결하였다. 기존의 쥐덫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성공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마케터는 제품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과거의 큰 성공이 새로운 시도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마케팅은 언제나 소비자에게 답이 있다. 결국 우리 제품을 ‘선택’하는 사람은 과거의 성공이 아니라 ‘현재의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이 있다.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에 맞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모은다는 의미다.
심리학에선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확증편향 탓에 객관적으로 옳은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더 나은 방식에 귀를 닫게 된다.
확증편향이 작동하면 ‘시각의 전환’이 어렵다.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빠져 있으므로 새로운 시각을 갖기가 힘들다.
샴푸 회사들은 탈모 샴푸는 탈모 방지라는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능 강조의 방법으로 한방향(한방냄새)이 대세가 됐다. 향으로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확증편향이 작동한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같은 길로 가는 상황에서 자신만 다른 길을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LG생활건강은 그런 용기를 발휘하기 위해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했다.
‘아빠 스킨 냄새가 난다’, ‘한방향이 너무 강하다’는 소비자의 불만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향을 넣었다.
샴푸는 오랜 기간 욕실 한 구석에 놓여 있다. 욕실 인테리어를 위해서는 샴푸 용기의 디자인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용기를 별도로 구매해서 샴푸를 그 용기에 담아서 사용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LG생활건강은 이런 소비자 니즈도 놓치지 않았다.
LG생활건강 탈모 샴푸는 마케팅에서의 용기와 그런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소비자 관점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주는 사례다.
탈모는 치료가 힘든 질환 중의 하나라고 한다. 머리를 감는 일과 같이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를 통해 탈모가 완화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일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탈모샴푸라면 향과 용기 디자인이 좋은 걸 선택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탈모에 더 효과적인 샴푸가 출시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향과 디자인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까? 탈모샴푸 뿐 만아니라 기능성제품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이다.
다른 많은 브랜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김치냉장고하면 ‘D사’, 정수기하면 ‘C사’, 피로회복제는 ‘B’ 등을 떠올린다.특정 대상이 마치 어떤 범주를 대표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으로 인해 생기는 소비자들의 인식적 편향이다. 이들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탈모샴푸 시장에서 탈모샴푸하면 소비자들은 어떤 브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까? ‘닥터그루트’? 아니면? 답이 궁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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