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된 방직·제지공장…옛 조선소엔 '북살롱'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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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것의 재발견
강화 조양방직 '뉴트로 카페'로
속초 칠성조선소 전시·놀이시설
부산 고려제강도 복합문화공간
완주 제지공장에는 '산속 등대'
청주 연초제조창은 '현대미술관'
죽은 공간 '문화의 옷' 입고 부활
고두현 논설위원
강화읍 신문리 향나무길에 자리 잡은 ‘조양방직’. 1933~1958년 직물산업을 이끌었던 공장이 긴 폐허의 시간을 견뎌내고 현대식 카페로 탈바꿈했다. 빛바랜 천장과 목재 기둥 아래 여공들이 늘어앉아 일하던 작업대는 긴 커피 테이블로 변했다. 세월의 더께를 완전히 벗겨냈지만 이름은 전통 그대로 ‘조양방직’이다.카페 안에는 진귀한 소품도 많다. 2018년 이곳을 리모델링한 이용철 대표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골동품이다. 공장 건물을 포함한 전체 면적은 6611㎡(약 2000평). 주말이면 연인과 가족 나들이객이 줄을 잇는다. 일제강점기 강화도 갑부 홍재용·재묵 형제가 세운 근대식 공장이 젊은 감성의 ‘뉴트로(신복고·新復古) 성지’로 거듭났다.
코로나 시대 연인·가족 쉼터로
조선소 창립자 최칠봉 씨의 손자 부부 덕분에 3300㎡(약 1000평) 규모의 이 땅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옛적 고기잡이배와 배를 끌어 올리던 크레인은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이곳에는 주말마다 3000~4000명, 연간 40만 명이 방문한다. 최근엔 코로나 때문에 좀 줄었다.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서점(예스24)과 갤러리(국제화랑 분관), 자동차전시관(현대모터스튜디오), 예술전문도서관, 음악홀(금난새뮤직센터)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건물 사이의 산책로를 거닐며 카페와 식당에서 여유를 즐긴다.섬이나 바닷가뿐 아니라 산속과 도심에도 이런 곳이 많다. 전북 완주 소양면 해월리의 산속 제지공장에는 높이 33m의 빨간 ‘산속 등대’가 서 있다. 전일제지와 동일제지의 굴뚝에 새 디자인을 입힌 것이다. 옛 폐수처리장을 활용한 야외극장과 미술관, 체험관, 카페, 아트플랫폼도 갖췄다. 2019년 방탄소년단(BTS)이 앨범을 촬영하고 간 뒤 더욱 유명해졌다.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은 한때 근로자 2000명이 일한 국내 최대 담배공장이었다. 2018년 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문을 열면서 ‘핫플’로 떠올랐다. 다른 곳에선 접근이 제한된 수장고(收藏庫)를 이곳에선 누구나 볼 수 있다. 담뱃잎 보관소인 동부창고는 문화예술 교육, 체험 공간으로 쓰인다.
경기 안양의 유유산업 옛 공장은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경북 문경 쌍용양회 공장도 산업문화유산과 연계한 컬처팩토리, 아이디어파크 등 스포츠·문화 복합테마공간으로 변모할 예정이다.이런 명소에는 경제와 문화의 숨결이 함께 배어 있다. 땅이나 건물 면적이 다른 곳보다 넓어 활용도가 높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현대 문화의 향기, 젊은 감각의 스토리텔링 요소까지 갖췄다. 이른바 문화경제학의 토양 위에 피워올린 인문학의 향연장이다.
세계적으로도 오래된 건축물에 문화의 옷을 입혀 각광받는 곳이 많다. 버려진 유휴 건축물을 활용하니 비용이 절감되고, 무형의 창의성과 상상력까지 체득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