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이번엔 로봇이다"...시속 8km '테슬라 봇'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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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로봇사업 진출 선언1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본사의 ‘AI(인공지능) 데이’ 행사장. 자율주행 기술 관련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로봇 분장을 한 사람이 일렉트로닉댄스음악(EDM)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웃으며 쳐다보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단상에 올라 “테슬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봇 회사”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약 4만8000명이 지켜본 행사 생중계 화면엔 몇 분 전 춤추던 사람과 똑같이 생긴 ‘테슬라 봇(Tesla Bot)’이 등장했다. 전기차에서 자율주행차로 혁신 행보를 이어온 테슬라가 로봇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자율차 다음 혁신은 휴머노이드
키 172cm…20㎏ 짐 들 수 있어
머스크 "내년 시제품 선보일 것"
'자율주행 고도화' 슈퍼컴도 예고
일각 "또 쇼맨십 부리나" 의구심
테슬라의 미래는 인간 돕는 로봇
이날 머스크가 공들여 설명한 제품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이다. 로봇은 키가 5피트 8인치(약 172㎝)에 무게는 128파운드(약 57㎏)다. 팔, 다리, 목, 관절 등에 30개의 전기 구동기를 달아 45파운드(약 20㎏)의 짐을 운반할 수 있다. 이동 속도는 시속 5마일(약 8㎞)이다.로봇엔 테슬라 전기차에 적용된 자율주행 기능도 들어갈 예정이다. 머리 쪽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화면이 표시된다. 머스크는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탐색하는 AI 엔진을 인간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내년쯤 프로토타입(시제품 전의 제품 형태)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머스크는 테슬라 봇이 인간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하기 위해 개발한 인간에게 우호적인 로봇이라는 설명이다. 머스크는 “로봇에게 볼트를 들어 차에 부착하라고 하거나 가게에 가서 식료품을 사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며 “그러면 노동력 부족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퍼컴퓨터 ‘도조’로 AI 기술 고도화
테슬라의 로봇 사업 진출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달 초 SNS에 공개한 AI 데이 초청장에 ‘우리의 차를 넘어서는(beyond our vehicle fleet)’이란 문구가 있었다. 지난 17일 머스크가 ‘로봇 개’로 유명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영상에 ‘인상적이다’고 트윗을 남긴 것도 힌트가 됐다.머스크가 공개한 로봇이 테슬라의 여러 미래 사업 중 일부분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로봇 사업 진출이 화제가 됐지만 약 90분의 프레젠테이션 중 80분 이상을 할애할 정도로 테슬라가 역점을 둔 것은 AI 슈퍼컴퓨터인 ‘도조’와 자체 개발한 AI 칩 ‘D1’이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도조의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로봇이 아닌)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도조는 테슬라가 전 세계에 판매한 100만 대가량의 전기차로부터 축적하고 있는 자율주행 데이터를 고도화하는 역할을 하는 슈퍼컴퓨터다. 테슬라는 도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초당 36테라바이트(TB)의 연산이 가능한 D1 반도체를 개발했다. D1 칩 250개가 한 세트를 이루는데 12개 세트(3000개)를 조합하면 초당 100경 번의 계산을 할 수 있다. 머스크는 “도조는 내년부터 가동되는 진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된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 관련 논란과 관련해선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능이라고 선전해온 ‘오토파일럿’ 시스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행사 시작 전 ‘Full Self-Driving(완전자율주행)’이란 문구를 표기한 자율주행차 영상을 10분 이상 상영했다. 업계에선 “테슬라가 자사 자율주행 기능에 대한 외부 비판을 반박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쇼맨십 아니냐’ 지적도 나와
머스크의 발언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이날 “테슬라 봇은 머스크가 직원, 고객, 투자자 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년간 이어온 ‘쇼맨십’의 한 예”라고 지적했다. CNBC는 머스크가 2019년 4월 열린 ‘자율주행의 날’ 행사에서 “2020년까지 100만 대의 자율주행 택시를 운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실행하지 못한 것을 사례로 들었다.이번 행사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2019년 공개하고 100만 대 이상 사전 예약을 받은 사이버트럭 출시일,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상용화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테슬라는 이날 행사장에 사이버트럭 모형을 전시했지만 머스크는 추가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