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봉쇄령에 공급망 '흔들'…소비마저 꺾여 기업실적 '경고등'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공장 가동 중단…부품·소재 공급난
中 허브항구 폐쇄…컨선 운임 연일 치솟고 수출길도 꽉 막혀
'보복소비' 약발까지 떨어져…기업들 마케팅·재고관리 '비상'
베트남 남부 빈즈엉성에서 전기부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 A사는 지난달부터 공장 가동률이 20% 선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한 영향이다. 현지 주정부는 근로자 900여 명의 외부 이동을 금지하고 회사가 숙식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주 1회 코로나19 검사도 시행해야 한다. A사 관계자는 “비용 부담이 너무 커 근로자 수를 줄이더라도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호찌민시에 있는 중소 봉제업체 B사는 지난달 초부터 아예 공장 문을 닫았다. B사 대표는 “숙식 시설을 조만간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주정부 공무원이 당장 문을 닫으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호찌민시는 다음달 15일까지 생필품이나 의약품을 구매할 때 외엔 외출과 야간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델타發 공급대란 오나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공급망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코로나19로 도시 전체를 봉쇄하면서 가동률을 낮추거나 아예 공장 문을 닫은 업체가 많아서다. 공장에서 근로자들의 숙식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계속 생산설비를 가동하는 대기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인근 협력사들이 부품과 소재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공장을 가동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돌릴 수 있을 때 최대한 공장을 돌리라는 게 현재 지침”이라며 “수요와 물류 등은 생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베트남 주요 생산법인이 3~4주 단위였던 재고 관리 기간을 5~6주 수준으로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기업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물류다. 대표적 글로벌 컨테이너선 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지난 20일 4340.18로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올 들어서만 51.2% 급등했다.중국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의 메이산 컨테이너 부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폐쇄된 영향이 컸다. 닝보·저우산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컨테이너 물동량이 많은 항구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과 유럽으로 실어나르는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세계 최대 항구인 상하이항도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공급망 붕괴와 물류 대란으로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공급이 다음달부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8월까지는 재고로 버텼지만 9월 중순부터는 제품별로 수요와 재고의 불일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소비 수요도 둔화 조짐

공급망과 물류난은 어떻게든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제품이 기대만큼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펜트업 소비’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소비 수요 둔화는 이미 2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가전 부문 실적에서도 드러났다. 삼성전자 IM(모바일) 부문 영업이익은 1분기 약 4조4000억원에서 2분기 약 3조2400억원으로 감소했다. LG전자 HE(TV) 부문도 같은 기간 3953억원에서 3335억원으로 영업이익이 줄었다. 2분기가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예상보다 영업이익 감소폭이 컸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 등 연말 쇼핑시즌을 겨냥한 물량 출하가 집중되는 3분기에도 이렇다 할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LG전자에서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부의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18.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KTB증권은 삼성전자 관련 리포트에서 “DP(디스플레이)와 IM, CE(소비자가전)는 플랫(완만)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공급망 관리와 물류 비용이 급증한 가운데 매출까지 줄어들면 국내 기업들의 실적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공급망 붕괴와 물류 차질에 이어 수요 둔화가 동시에 덮치면서 기업들도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신영/강경민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