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배우자의 갑작스런 죽음, 유산 한 푼도 못 받는다 [정인국의 상속대전]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세상을 떠난 사실혼 남편과 남겨진 아내
사망 전 재산분할청구소송 제기해야 유산 받을 수 있어
남편 간호하면, 사실혼 관계 정리 부정 당해 …"개선돼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실남 씨와 성실녀 씨는 2010년 결혼식을 올렸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10년 넘게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실남 씨는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으나, 현재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건실남 씨와 성실녀 씨는 동대문에서 함께 옷장사를 하여 모은 재산으로 동대문 점포(시가 20억원 상당)와 강남 대치동 아파트(시가 30억원 상당)을 구입했습니다. 두 개의 부동산 모두 남편인 건실남 씨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건실남 씨가 느닷없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되었네요. 성실녀 씨는 남편의 회복을 기원하며 밤낮없이 간호하였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건실남 씨의 전처와 아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건실남 씨의 영정 앞에서 성실녀 씨에게 건실남 씨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염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것일까요?

배우자 사망으로 사실혼 소멸…재산분할 불가능

이 경우 건실남 씨의 재산은 몽땅 직계비속인 아들에게 상속됩니다. 아들이 미성년자라면 이혼한 전처가 그 재산을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반면 성실녀 씨는 남편 명의로 된 재산을 전혀 분할받지 못합니다. 사망으로 인한 재산분할은 민법상 상속의 법리에 따르는데,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배우자의 경우라야 상속인의 지위가 인정되기 때문이지요.

사실혼 관계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문제점을 갖고 있으나, 법률혼주의를 택하는 현행법상으로는 달리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에서 종종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재벌 회장님이 앓아 눕거나 위독한 상태에서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를 챙기는 장면입니다. 유언을 남기거나 가족들이 다 모인 가운데 '혼인신고'를 했노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재산을 두고 다투던 자녀들과 사위, 며느리들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재벌들이 나오는 드라만의 뻔한 '클리셰'라고 넘겨볼 수 있겠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헌재 전원재판부 2013헌바119, 2014. 8. 28.]이 사건 법률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사망 전에 사실혼 관계 정리해야 상속 가능

사실혼 관계는 사실상의 관계를 기초로 존재하는 겁니다. 당사자 일방의 의사에 의해 자유롭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일단 사실혼 관계가 해소되면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분할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므1379,1386(반소), 판결]

사실혼이라 함은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관념상으로 가족 질서적인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이므로 법률혼에 대한 민법의 규정 중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는 규정은 유추적용할 수 없으나, 부부재산의 청산의 의미를 갖는 재산분할에 관한 규정은 부부의 생활공동체라는 실질에 비추어 인정되는 것이므로 사실혼관계에도 준용 또는 유추적용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 성실녀 씨가 사실혼 관계를 해소하려면 남편의 사망 전에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사실혼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드러내야 합니다.
문제는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사실혼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의사가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쓰러진 남편을 앞에 두고 병간호는커녕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한다는 건 윤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부부가 공동으로 이루어낸 재산에 대해 성실녀 씨가 정당한 자기 몫을 분할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쓰러진 남편의 병간호를 한 사실혼 배우자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쓰러진 남편을 나몰라라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혼 배우자라야 자기 몫을 받을 수 있다? 분명히 입법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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