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의 역발상? 작고 싼 '아이폰 나노'…11년 전 메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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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지 "아이폰 나노 어떻게 생겼을지 흥미로워"대형 화면이 대세로 굳어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초소형 화면 폰이 다시 유행할 수 있을까. 작은 크기를 고수했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사진)의 아이디어가 재조명받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업계 다시 초소형 바람 불 수도"
스티브 잡스 생전 이메일 공개됐다
23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버지'(The Verge)는 최근 애플과 에픽게임즈 간 소송 과정에서 알려진 잡스의 이메일 내용을 소개하며 "잡스의 이메일을 통해 애플이 실제로 '아이폰 나노' 출시를 검토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현재 에픽게임즈는 애플이 독점적으로 앱스토어를 운영한다면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상황. 해당 내용은 소송 자료 정리 중 사내 메일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공개된 메일은 2010년 10월 발송된 것이다. 하단부에 '아이폰 나노 계획'(iPhone nano plan)이라는 중간 제목과 함께 '비용 목표' 와 '조니(Jony)가 렌더링 모델을 보여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니는 당시 애플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로 추정된다.메일에는 2011년 추진해야 할 전략 중 하나로 '아이팟 터치를 기반으로 한 저가형 아이폰 모델 출시'라는 내용도 적혔다. 더버지는 "정확히 모델 규격이 언급되지는 않았다"면서도 "애플이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아이팟 나노라는 브랜드를 검토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해석했다.실제로 애플이 아이폰 나노를 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당시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애플이 기존 아이폰보다 3분의 1 정도로 작으면서 가격은 약 200달러(한화 23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아이폰 나노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이후 애플은 아이폰 나노 대신 아이폰3GS와 유사한 크기인 아이폰4 모델을 출시했다.
더버지는 "애플은 2017년 아이팟 나노를 끝으로 '나노'라는 이름은 제품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만약 잡스의 계획이 실행됐다면 아이팟 나노처럼 3.5인치의 작은 화면을 탑재한 아이폰 나노가 출시됐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극단적으로 심플한 디자인 고집했던 잡스
잡스는 생전 3.5인치 아이폰에 집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아이폰을 상징했던 '둥근 홈버튼'을 유지하면서 극단적 심플함을 유지하려면 한 손 조작이 가능하고 바지에도 쉽게 들어가는 사이즈로 3.5인치가 적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작이 된 아이폰 4S도 3.5인치였다.테크크런치는 2011년 보도에서 "애플은 구글 등 경쟁사에 맞서기 위해 통신사 보조금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보급형 모델을 출시하려 한다"고 했다. 이는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 구글과 삼성전자를 적극 견제하는 효과를 내면서 작고 저렴한 아이폰 출시를 통해 애플 생태계를 확장하려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애플은 그해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등이 개선된 고급형 아이폰 출시에 집중했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잡스도 2011년 10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이후엔 스마트폰 시장이 점차 대화면을 선호하는 트렌드로 변화했다. 잡스에 이어 애플 수장에 오른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잡스의 3.5인치 법칙을 깨고 아이폰5에 4인치 화면을 적용했다. 현재 애플이 생산하는 가장 큰 스마트폰인 '아이폰12 프로 맥스'는 화면이 6.7인치에 달한다. 가장 작은 '아이폰SE2'의 화면 크기도 4.7인치다.
"최근 '안티 소셜미디어' 트렌드 주목해야"
잡스가 위기에 빠졌던 애플에 다시 복귀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은 회사 제품 라인업이었다. 40여 개에 달하던 제품 사양을 판매량과 기능별로 분류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정리했. 이후 애플의 제품군은 큰 틀에서 4가지로 추려졌다. 애플은 이 시기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의 기틀을 다졌다.더 작은 아이폰을 만들려 했던 잡스의 철학은 애플에서마저도 이어지지 못했다. 다만 스마트폰 대형화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중화권 한 업체가 초소형 스마트폰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에서 뜨고 있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모니'(Mony)는 이달 초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인디고고'를 통해 3인치 디스플레이의 초소형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민트'(Mint)를 공개했다.
아이폰5를 대폭 축소한 듯한 디자인의 민트는 양측면 볼륨, 전원 버튼, 하단 스피커홀까지 아이폰5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크기는 89.5 x 45.5 x 11.5mm 사이즈라 신용카드와 비슷해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가격도 99달러(약 11만원)에 불과해 대형 화면, 고사양, 고가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했다.
중화권에서 시장 반응이 뜨거울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생산 업체들도 비슷한 사양의 콤팩트 스마트폰 출시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더버지 보도는 잡스의 스마트폰 철학이 새롭게 발굴된 사례라 충성도 높은 애플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최근 '안티 소셜미디어' 붐이 일면서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건 위험하고,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는 건 피곤하고, 너무 큰 스마트폰은 무겁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머지 않아 스마트폰 업계에 '초소형 트렌드'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는 시대가 분명히 온다. 그때를 대비해 다시 초소형 하드웨어 제작에 글로벌 업체들의 연구개발(R&D) 역량이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