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삼성의 절박감 "지금 밀리면 재기불능…비상 상황"

삼성, 투자·고용계획 발표
"이번 투자 국내외 '비상상황' 감안"
"공격적 투자는 사실상 '생존전략'"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제일모직 주가를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 등 부당한 행위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이 24일 사상 최대 수준의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것은 현재 처한 상황이 전례 없는 위기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은 이날 향후 3년간 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 240조원을 투자하고 약 4만명을 직접 채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3년간 180조 투자, 4만명 채용 계획에 대한 실행을 마치자마자 역대급 투자·고용 계획을 다시 한번 발표한 셈이다.삼성은 이날 발표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절대우위 리더십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국내외 '비상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며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안전판'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산업으로,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삼성의 공격적 투자는 사실상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패권 경쟁은 전례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으로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이 파운드리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돼 있는 동안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 못하면서 현재 글로벌 반도체 전장에서 코너에 몰린 상태다.삼성의 투자가 지연되는 사이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와 '반도체 왕국' 재기를 꿈꾸는 미국 인텔이 빠르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5월 삼성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공식화한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투자처를 여전히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게 방증한다.
REUTERS.
반면 TSMC는 내년 7월 삼성전자를 제치고 업계 최초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는 모두 5나노 공정이 적용된 시스템 반도체 제품을 양산 중이다.

삼성이 TSMC를 따라잡으려면 3나노 공정에서 대형 고객사를 빼앗아야 한다. 삼성은 3나노에서 TSMC와 달리 전력효율을 최적화 할 수 있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TSMC를 추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3나노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 인텔은 아예 2025년 2나노 양산을 선언했다. 회로 선폭 2나노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TSMC도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는 '기술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제품이다. '반도체 패권 다툼' 상황에서 자국 정부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는 경쟁사들과 달리 삼성은 국가의 지원을 사실상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은 앞서 반도체 산업육성 지원에 50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대규모의 세제 혜택과 경제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중국은 2035년까지 반도체 등 첨단분야에 연구개발 예산을 매년 7% 이상 확대하기로 하고 기업들에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다. EU도 유럽 공동의 경제이익을 다루는 'IPCEI' 프로젝트에서 반도체를 필수 과제로 선정하고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역내 국가들의 점유율을 현재 10%대에서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기 위해 1450억유로(약 195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