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으로 번진 '인국공 사태'…이런 떼법 누가 조장했나

현대제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직고용을 요구하며 당진제철소 사무동을 점거한 것은 국가 기간산업 시설에 대한 불법 점거이고, 자칫 생산 차질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정규직과의 노노(勞勞) 갈등과 첨예한 공정(公正) 시비를 낳은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민간 기업에까지 본격 번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장 현대위아도 대법원 판결로 협력업체 근로자 64명을 직고용해야 한다. 전국 사업장의 비정규직까지 줄소송에 나설 경우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 한국GM과 포스코도 불법파견 문제로 대법 판결을 앞두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제로(0)’ 투쟁을 내걸고 오는 10월 총파업까지 예고했다.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비정규직의 처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본사가 아닌, 자회사 정규직은 경영난에 빠질 경우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제철소 사무실 책상 위에 올라 농성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아무리 합당한 요구라도 불법 무단 시위로 관철하려 해선 명분을 얻기 어렵다.

인국공 사태 이후 무리한 직고용에 따른 숱한 부작용이 목격되고 있다. 주요 공기업마다 갈등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또한 청년 취업준비생들의 기회를 앗아가고,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정규직과 비교해 또 다른 불공정 시비를 낳고, 인건비 부담을 늘려 공기업 적자폭을 키우는 부작용을 쏟아냈다. 이 모든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정규직 노조 기득권 지키기 등 근본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제로’라는 듣기 좋은 구호만 내건 정부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떼법’ 투쟁이 민간기업에도 먹힌다는 인식을 정부가 사실상 조장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를 강조한 것부터 그런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당진공장에 경찰 1200명이 출동하고도 내부 진입은커녕 ‘방역지침 위반 시 대응’ 엄포만 놓은 공권력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머리띠 두르고 집단으로 목소리를 높일 기회조차 없는 노동약자와 노동시장 밖 청년들의 하소연은 누가 들어줄 것인가. 정부는 이제라도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정하고 원칙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자율 결정에 맡긴다는 식의 책임 회피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