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겁의 세월이 깎은 조각품…신선도 탐한 영월 무릉도원
입력
수정
지면A22
강원 영월 늦여름 산책코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요선암
도자기처럼 매끈, 돌개구멍 송송
신선이 노닐던 정자 요선정
숙종이 직접 지은 詩현판 걸려
한반도 안의 작은 한반도지형
굽이치는 물줄기가 만든 걸작

신선이 노닐던 놀라운 풍광, 요선암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영겁의 시간이 빚어낸 놀라운 풍경에 도달한다. 요선암(邀仙岩)으로 불리는 묘한 바위덩어리들에 관한 이야기다.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린 봉래 양사언이 평창군수를 지낼 때 이곳의 풍광에 반했다. 양사언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거기서 이름이 유래했다. 세월이 흘러 글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양사언을 감탄하게 만든 풍경은 그때 그대로다.
강가에 널브러진 너럭바위가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신묘한 자연의 솜씨에 경탄하게 된다. 바위를 만져 보면 도자기처럼 매끈한 것이 마치 조각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깎아놓은 것 같다. 족히 50m는 돼 보이는 주변의 강바닥이 온통 기묘한 바위로 뒤덮여 있다. 바위는 모두 오목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를 돌개구멍 혹은 구혈(穴)이라고 한다. 돌개구멍은 암반의 오목한 곳에 물이 소용돌이칠 때 모래나 자갈이 함께 섞여서 암반을 마모시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돌개구멍은 지름이 1m에 달하는 것도 있고 깊이가 3m에 이르는 거대한 것도 있다. 파도처럼 너울너울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거대한 이무기가 지나간 것처럼 굵은 원통형의 모습도 보인다. 기묘한 풍경이다 보니 무수한 전설이 담겨 있다. 신선들이 탁족을 했다거나 선녀들의 목욕탕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숙종 어제시 걸려 있는 요선정
요선암에서 10분 거리에 요선정(邀仙亭)이 있다. ‘신선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요선정은 단출하기 이를 데 없다. 요선정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했다. 정자보다 유명한 것은 현판이다. 숙종이 내린 어제시 현판이기 때문이다.숙종의 어제시는 원래 영월군 주천면 청허루에 걸려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됐다. 숙종에 이어 즉위한 영조가 숙종의 어제시를 직접 찾아내 다시 쓴 뒤 편액을 내렸다. 일제강점기에 청허루가 쇠락하고 걸려 있던 편액이 일본인 손에 들어가자 주천의 유지들이 편액을 재구입해 요선정에 봉안했다. 요선정 안에 영조가 쓴 숙종대왕 어제시와 정조 어제시 편액이 같이 걸려 있다.
요선정 옆에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크기 3.5m의 석불은 머리와 어깨 부분이 바위에서 빠져나오려는 기묘한 형태로 새겨져 있다. 바위에서 나와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부처의 마음을 담은 것일까. 요선정은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마애불 뒤편으로 돌아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주천강과 법흥계곡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이고, 온통 푸른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다. 절벽 끝자락에는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주천강의 풍경을 더욱 고즈넉하게 한다.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보인다
영월=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