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아파트라도 일단 사자"…청약 포기하는 2030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앞두고
가점 낮은 2030, 청약 꿈 못꿔
신혼특공도 월소득 889만원 이하만

당첨 돼도…"5~10년은 전세 전전해야"
정부, 월세지원·청년 청약까지 내놨지만 '글쎄'
서울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지난번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보니 특별공급 물량이 대부분이던데 어차피 가점이 낮아 당첨 확률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낮은 가능성에 매달리는 것보다 낡은 아파트라도 얼른 매수해야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30대 무주택자 직장인 박수혜 씨)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 10만가구가 넘는 사전청약 물량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주택 청약 가점이 낮아 청약 당첨 확률이 거의 없는 젊은층들은 오히려 ‘패닉바잉(공황구매)’으로 돌아서고 있다. 정부가 청년특별대책까지 내놓으면서 금융지원을 통해 내 집 마련을 돕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이 또한 2030세대들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으로 평가된다.

"당첨 가능성 낮은데…일단 사자"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민영주택(8만7000가구)과 ‘2·4 대책’으로 도입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주거재생혁신지구에서 나오는 공공주택 일반분양분(1만4000가구)을 활용해 총 10만1000가구를 사전 청약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이 중 7만1000가구가 수도권에 공급된다.

물량이 대거 쏟아지지만 일반분양 물량은 많지 않다. 공공 사전청약의 경우 일반분양 물량이 15%, 특별분양 85%다. 민간 사전청약은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 이 비율이 각각 42%, 58%다. 다자녀, 노부모 부양, 신혼부부, 생애최초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2030세대는 공공 사전청약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특공 조건엔 부합하지 않지만 가점이 높은 중장년층은 일반 청약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윤성원 국토교통부 1차관이 주택 공급 시점을 앞당기는 사전청약 확대로 실수요자의 수급 불안 해소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청약 가점이 낮은 20~40대 실수요자들의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 특공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가점도 쌓지 못한 미혼 무주택자들의 경우 사전청약을 포기하고 패닉바잉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서울 구로구의 한 구축 아파트를 산 30대 박 모씨는 “내년 초 결혼을 해야 하는데 집값이 계속 폭등하는 게 눈에 보이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을 해서 집을 살 수 밖에 없었다”며 “3기 신도시 청약도 고민해봤지만 특공 요건은 안되고 가점도 20점대에 불과해 일반분양 역시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한 뒤엔 이미 집값이 더 폭등해있을 것 같아 급히 매수했다”고 말했다.일부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도 3기 신도시 청약에서 소외돼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특별공급을 신청하려면 소득 기준(2021년 민영주택 맞벌이 기준 세전 월 889만원)을 맞춰야 해 급여가 이보다 높으면 아예 지원 자격이 없다. 대기업에서 맞벌이를 하는 신혼부부 한모 씨(33)는 “돈이 없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인데 소득 기준에 걸려 넣을 수 있는 청약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정부는 영끌해 집을 사지 마라고 하지만 대안이 없지 않느냐”며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본격화되면 전세 물량마저 동이 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대출을 최대치로 일으켜 집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 씨는 최근 서울 도봉구에 집을 샀다.


당첨 돼도…"최대 10년은 전세난민"

청약에 당첨이 돼도 입주까지 쉽지만은 않다. 전문가들은 3기 신도시 단지들이 입주에 들어가려면 최소 5~10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명박 정부에서 공급한 보금자리주택도 사전청약 이후 토지보상 절차가 늦어지면서 당첨 후 10년이 지나서야 입주하기도 했다. 공급물량이 부족한 서울에서 실수요자는 내년 하반기 사전청약 이후에도 몇 년간 임대차 시장에 묶일 수 밖에 없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신규택지 지구인 성남 복정1지구 사전청약 접수처. /연합뉴스
이미 부동산 온라인 카페 등에선 "사전 청약 물량 확대가 무주택 실수요자에겐 '희망 고문'이 될 것"이란 의견이 속출하는 중이다. 자신을 40대 직장인이라 밝힌 한 네티즌은 “이번 주택공급 확대안은 결국 본청약도 아닌 사전청약 단계인데 예전의 보금자리주택이나 3기 신도시 토지수용 과정을 지켜보면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무주택자들이 집을 매매하지 못하고 전·월세를 전전해야 하는데 임대 매물이 없으니 거주하는 내내 불안에 시달려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이번에 정부가 새로 발표한 민간 아파트 사전 청약은 당첨 시 청약 통장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당첨자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청약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기존 공공주택 사전 청약은 당첨되더라도 다른 아파트 청약에 도전할 수 있으나, 민간 사전청약 조건은 더 까다로운 셈이다.

한편 정부는 전날 2030 청년세대들을 위한 청년특별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주요 내용이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혜택이 있긴 하지만 빚을 쉽게 내주거나 소액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공급은 임대 중심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중위소득 60%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매달 20만원의 월세를 최대 12개월간 지원한다. 월세 바우처로 대책으로 가구소득 기준 중위 100%와 본인 소득 기준 중위 60% 이하를 충족하는 15만4000명이 대상이다. 무이자 월세 대출을 신설하고, 청년보증부 월세대출의 소득기준은 연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한다.내년에 공급되는 청년임대주택 5만4000호에는 청년 수요를 반영한 테마형 임대주택도 구성될 예정이다. 내집마련을 위해서는 무주택 청년 등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되는 공공자가주택이 예정됐다. 행복주택은 계약금 인하(10%→5%), 재청약 허용, 거주기간 연장(6년→30년) 등 제도를 개선한다.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의 가입기간을 2023년까지 2년 연장하고, 소득기준도 연 3000만원에서 3600만원으로 완화한다. 청년·신혼부부 대상으로는 최대 40년 고정금리로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한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