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의 마침표, 동해에서 찍어볼까

여름의 끝자락에 떠나는 동해 묵호항 여행

최근 문 연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허공 위 달리는 공중자전거 '아찔'

산동네 모습 간직한 논골담길
묵호항 어민들의 애환 묻어나
해돋이 명소 촛대바위도 가볼만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올여름은 유난히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해를 바꿔가며 생활을 위협한 코로나19의 기세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더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여름을 즐기는 것조차 적잖은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무작정 동해로 갔다. 익숙한 듯 새로운 동해는 방문객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함없이 청정했다. 바다는 한없이 눈부셨고 묵호마을 논골담길과 ‘도째비 스카이밸리’까지 볼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표현처럼 ‘지난여름은 위대했다’. 올여름이 선사한 위대함의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명소로 부상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동해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를 꼽는다면 묵호항을 빼놓을 수 없다. 묵호항 주변에는 논골담길과 묵호등대 등 잘 알려진 명소가 적지 않지만, 최근 개장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핫’한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도째비’는 강원도 사투리로 도깨비를 뜻한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원래 집터와 풀만 무성했던 유휴지였다. 비오는 날이면 마치 푸른빛의 도깨비불이 보이는 것 같아서 ‘도째비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 듯한 이곳에 해발 59m의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세워졌다. 도깨비불과 도깨비방망이 등 전설을 담은 구조물도 같이 세웠다.

스카이밸리에는 다양한 체험시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영화 ‘E.T.’의 한 장면처럼 하늘 위를 달리는 자전거인 스카이사이클이다.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천천히 허공 위를 달리는 자전거는 한마디로 스릴 만점이다.

묵호항 어민의 애환이 담긴 벽화

논골담길을 빼놓고 묵호항 관광을 얘기할 수 없다. 원래 논골담길은 묵호항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연명했던 어부와 가족들이 모여 살던 언덕마을이다. 한때 물고기잡이로 큰돈을 벌 때는 지나가던 개도 1만원짜리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이 돌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영화(榮華)의 시절은 짧았다. 논골담길은 이후 시간이 멈춘 공간이 됐다. 판자와 돌과 슬레이트 등 전형적인 산동네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어촌답게 산비탈 공간에는 소나무로 만든 덕장이 즐비했다. 오징어와 대구는 물론 명태, 가오리 등 다양한 어종들을 말렸다. 안타깝게도 오징어와 명태는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다. 이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던 것은 명태였다. 11월과 12월 갓 잡은 명태만 골라 동해의 해풍에 말리면 깊은 맛이 났다.

논골담길 곳곳에서는 다양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 한국관광공사가 ‘강소형 관광지’로 적극 홍보하면서, 동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르는 ‘핫플’로 떠올랐다. 논골담길은 총 4개의 골목으로 이어진다. 논골1길과 논골2길, 논골3길, 등대 너머의 등대오름길이다.논골담길에 그려진 그림들은 묵호항 어민들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난다. 만선의 기쁨과 고단함을 막걸리 한 잔에 풀고 있는 어부의 술상, 생선 좌판에서 싱싱한 문어를 손질하는 아낙네,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어르신의 모습 등 담벼락 한 칸에 그려진 그림만으로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성큼 다가온다. 골목 벽화는 햇볕과 바람에 아련하게 바래가지만, 애잔한 감성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명태를 잡아 자식을 키운 아버지의 신산한 삶을 그린 벽화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논골담길 언덕배기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묵호등대는 1963년 6월께 세워져 묵호항을 밝히기 시작했다. 해발 93m에 있는 등대는 26m 높이에 달하는 7층 구조다. 동해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조망 장소로도 유명하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으로 물든 지붕들과 함께 바다가 보여 마치 동화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애국가 배경화면 추암 촛대바위도 눈길

과거 지상파TV 시작 시간에 맞춰 방영되던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추암 촛대바위’도 가볼 만한 곳이다. 해돋이 명소로 널리 알려진 장소이기도 하다. 촛대바위를 향해 걷다 보면 다정하게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는 형제바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추암은 해안가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수중 기암괴석이 자리해 어느 곳을 바라봐도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해안 절경이 가득하다. 촛대바위를 가장 가까이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추암 전망대에서는 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김홍도가 그린 ‘금강사군첩’이라는 화첩의 배경이 된 풍경도 조망할 수 있다.

동해= 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