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추진하는 현대오일뱅크 "친환경 기업 변신에는 돈이 많이 필요" [비상장사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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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편집자주] 현대중공업 그룹 정유사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10년 사이 세 번째로 코스피 상장에 도전한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쇼크'로 흔들릴 때도 '제 값을 받지 못할 바에야 상장을 하지 않겠다'며 아껴둔 기업이다. 전세계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석에너지 감축을 본격화하자 이에 대응하는 투자를 위해 불가피하게 상장을 추진한다. 그러나 최근 증시에선 아무리 좋은 기업도 꿈과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면 외면받는 분위기다. 현대오일뱅크는 투자자들에게 어떤 청사진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전세계적 '에너지 혁명'이 눈앞에 다가오는 가운데 현대오일뱅크는 미래 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투자금을 마련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자동차 등의 에너지원을 석유에서 친환경 전기로 전환하는 방안을 빠르고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된 '공룡'이 될 위기다. 현대오일뱅크는 석유화학 소재 포트폴리오 확대, 블루수소,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목표로 관련 투자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2010년대 세 번째 증시 상장 도전
"2030년까지 정유사업 매출 비중 절반으로 낮춘다"
이번엔 진짜 상장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현대오일뱅크가 이번엔 어떻든 상장을 성공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그룹과 현대오일뱅크는 어느 때보다 재무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과점 시장에서 안정적인 이익을 내며 한 때 구직자들에게 '신의 직장'으로 불렸지만 몇 가지 좋지 않은 상황이 겹지면서 재무상황이 과거에 비해 악화됐다. 현대중공업 그룹이 조선산업 쇼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대오일뱅크도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배당해야했다. 현대중공업 그룹 차원의 재무도 빡빡하다. 자의반 타의반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를 잇따라 인수하느라 더욱 여유가 없다.현대오일뱅크는 2010년대 후반부터 정유업을 넘어 플라스틱과 합성고무 등 제품 소재를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으로의 진출을 확대하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2014년 유가 폭락과 실적쇼크를 경험한 뒤 사업 다각화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정제능력 확대 및 고도화 설비투자, 자회사를 통한 석유화학 사업 확장 등에 매년 연간 800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작년엔 SK네트웍스로부터 주유소 사업권을 통째로 인수하는 등 기존 정유사업도 확장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유가가 또 폭락하고 지난해 359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의 순차입금은 7조원대 중반에 이르며, 부채비율은 작년말 기준 195%까지 치솟았다.
플랜 B가 있었던 두 번의 상장철회
현대오일뱅크의 과거 두 차례 상장 철회 때와 비교해봐도 IPO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1990년대말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에 매각했던 현대오일뱅크를 되찾아온 이듬해인 2011년 IPO를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 원유수출을 제재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 국가)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기업가치가 대폭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그룹이 현대오일뱅크 지분 인수대금 2조5000억원의 부담을 해소할 대안도 충분했다. 보유하고 있던 현대차 주식 320만3420주(1.45%)를 7000여억원에 매각하고 회사채를 발행했다. 당시 그룹이 벌어들인 이익도 많았다.2017년엔 그룹의 재무적 어려움으로 IPO 추진했으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의 유탄을 맞아 절차가 지연됐다. 그 사이 그룹이 자산매각 등으로 최악의 위기를 넘겼고, 증시도 침체되면서 상장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대신 2019년초 사우디 아람코에 현대오일뱅크 지분 17%를 매각해 1조3749억원을 확보했다.
이번엔 기업 공개를 통하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자체 시설 투자를 비롯해 석유화학 사업을 맡은 자회사들인 현대쉘베이스오일, 현대케미칼, 현대코스모 등에 올해만 1조9000억원의 추가 투자를 해야한다. 여기에 수소사업과 바이오 산업 등 미래 신사업 투자금까지 동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투자를 미루면 이미 적극적으로 뛰고있는 SK이노베이션과 같은 경쟁사들에 뒤처질 위기다.
수소·바이오 사업, '조만간 돈이 될 것'
현대오일뱅크가 주식시장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신사업의 세 축은 '블루수소', '화이트 바이오', '친환경 화학·소재' 사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3월 2030년 정유업 매출비중을 45%로 줄인다는 '비전2030'을 발표했다. 지금은 정유업 매출이 85%에 이른다.가장 먼저 현실화되는 신사업은 화학·소재 부문이다. 3조1000억원을 쏟아부은 자회사 현대케미칼의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및 폴리머 공장이 이르면 올 연말부터 가동될 전망이다. 석유화학 사업의 매출은 아직 비중이 낮지만 수익성은 높다. 석유화학 제품 사업은 경기변동과 유가등락에 따른 실적 널뛰기가 덜하다.
블루수소·화이트바이오 사업군으로의 진출도 본격화한다. 블루수소는 액화천연가스(LNG)를 통해 생산한 수소를 뜻한다. LNG에서 수소를 추출할 때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이를 포집해서 따로 저장해야 '블루수소'로 인정받는다. 생산한 수소는 자동차와 선박 등의 연료로 활용한다. 한국남동발전과는 수소 발전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물인 탄소 관련 소재도 활용한다. 현대오일뱅크는 건설사 DL이앤씨(옛 대림산업)과 함께 정유 부산물인 탈황석고와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건축 자재를 생산·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최근엔 수소연료전지 분리막 생산 설비를 구축해 자동차용 수소연료전지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옥수수·콩·목재류 등 식물자원을 원료로 화학제품이나 바이오연료 등을 생산하는 화이트 바이오 분야 사업도 시동을 걸었다. 지난 6월 대한항공과 ‘바이오항공유 제조 및 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규격 제품 생산과 상용화를 위한 연구 및 조사, 공항 내 급유 인프라 구축, 관련 정책 대응 등 바이오항공유 생태계 전반에 걸쳐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대한항공에 공급할 바이오항공유 생산 공장 건립도 검토중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