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1000일…미·중 갈등에 잔다르크처럼 미화되는 화웨이 부회장

전자발찌를 찬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지난 18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AFP
중국이 캐나다에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석방하라고 다시 촉구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멍 부회장 석방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그를 미·중 갈등 과정에서 미국에게 부당하게 탄압받는 아이콘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27일 신화통신과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멍 부회장 사례를 두고 중국 기업에 대한 고의적 탄압이라며 "미국 정부는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억압하기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는 미국에게 이용당해 멍 부회장이 캐나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1000일 동안 구금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중국은 어떠한 형식의 정치적 협박과 사법권 남용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멍 부회장의 석방을 촉구했다.충페이우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도 중국 정부가 멍 부회장의 석방에 나서고 있다면서 그를 위로했다. 충 대사는 지난 25일 멍 부회장과 통화에서 "중국은 지속적으로 캐나다 정부에 중국의 입장을 전하며 가능한 한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멍 부회장은 화웨이를 창업한 런정페이 최고경영자(CEO)의 장녀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다. 런 창업자와 성이 다른 것은 어머니 멍쥔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중국 기업 가운데 매우 드물게 세계 시장 공략에 성공한 기업이다. 내수 시장에 머물러 있는 알리바바나 텐센트에 비해 중국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국민기업'이다.

1993년 화웨이에 2010년 CFO에 오른 멍 부회장에게는 아버지 후광으로 빠르게 승진했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2018년 12월 캐나다에서 체포되면서 오히려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고, 화웨이 승계도 사실상 확정됐다는 평가를 받는다.멍 부회장은 2018년 12월1일 홍콩에서 멕시코로 이동하면서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다가 캐나다 경찰에 체포됐다. 대이란 제재 혐의를 적용한 미국의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멍 부회장은 체포된 지 10여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가택 연금돼 있다.

미국은 2019년 1월 멍 부회장을 기소하고 그의 신병 인도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미국 검찰은 화웨이가 이란 통신업체와 거래하기 위해 스카이콤이란 홍콩 소재 유령회사를 동원했으며, 화웨이가 스카이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속이고 HSBC은행과 거래했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가 미국으로 인도하려 하자 멍 부회장은 캐나다 법원에 범죄인 인도 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맡은 캐나다 법원은 오는 10월21일 선고 날짜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중국 관영매체들은 멍 부회장 관련 보도를 잇따라 내놓으며 '멍완저우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집중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는 중국 입장에선 반드시 살려야 할 기업으로 꼽힌다. 멍 부회장이 미국에서 처벌을 받는 것 역시 중국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글로벌타임스는 멍 부회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매체는 1450만명이 동참했다는 청원서와 함께 멍 부회장 석방을 촉구하는 서한을 주중 캐나다 대사에게 보냈다. 글로벌타임스는 "전 세계 1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석방 요구에 캐나다 정치인들은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멍 부회장 구금으로 중국과 캐나다 양국의 무역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나다 제품을 수입하는 중국 기업들이 '플랜B'를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올 상반기 중국과 캐나다의 교역액은 작년 상반기보다 19.9% 늘어난 537억1000만캐나다달러로 집계됐다. 캐나다에게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 교역국이다.

글로벌타임스는 특히 카놀라 제품 수입 제한 가능성을 거론했다. 캐나다 특산 유채씨인 카놀라와 이를 재료로 만든 식용유인 카놀라유는 캐나다의 2위 수출품이면서 중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캐나다산 제품이다. 튀김 요리가 많은 중국인의 식생활에서 카놀라유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수입 제한 조치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