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79일 만에 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현장검증…재판 본격화

굴착기 기사 등 포승줄 묶인 피고인들 자료 읽고 작업지점 지목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의 철거건물 붕괴참사 현장에서 증거 보전과 조사를 위한 법원의 현장검증이 열렸다. 27일 광주지방법원 제2형사단독(부장판사 박민우)은 학동 4구역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참사 79일 만(80일째)에 열린 현장검증은 건물 붕괴 과정을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잔해물로 남은 증거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됐다.

공판의 일부인 만큼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 더미가 쌓인 참사 현장은 이날 법정으로 관리됐다. 불법 재하도급 업체 대표인 굴착기 기사, 공사 관리자 등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2명이 현장검증에 출석했다.

포승줄에 묶이고 모자를 눌러쓴 피고인들은 법무부 호송차에서 내려 경찰 통제선 너머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았다.
피고인들은 지하 공간만 남은 붕괴건물 주변에서 검사와 변호인 등의 질문에 답했다. 굴착기 기사는 증거물로 채택된 자료를 읽고, 특정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 통제선 앞에서는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측 보안 관계자가 법원 허가 없이 사진을 무단으로 촬영하다가 적발돼 잡음이 나오기도 했다.

현장검증은 붕괴건물에서 직선거리로 150m가량 떨어진 또 다른 작업 지점 등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 내 곳곳에서 이어지며 약 50분 만에 종료됐다. 피고인들은 법무부 호송차로 이동하면서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았는데 할 말이 있느냐" 등 기자들 질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현장검증에 앞선 시민사회단체와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자 엄벌, 공정한 판결 등을 재판부에 촉구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은 기자회견에서 "불법 재하도급 감독을 소홀히 한 현대산업개발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는 유가족에 대한 지원대책위원회 재구성, 참사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을 정부와 여당에 요구했다.

이날 광주지법에서는 학동 4구역 철거업체 선정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브로커 이모(74)씨의 첫 공판도 별도로 열렸다.

광주지법 104호 법정에서 형사10단독 김용민 판사 심리로 진행된 재판에서는 인정신문과 향후 재판 일정 등을 논의했다.

철거건물 붕괴참사는 지난 6월 9일 오후 4시 22분께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의 버스 정류장에서 발생했다.

철거공사 중이던 지상 5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바로 앞 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 1대가 잔해에 매몰됐다. 짓눌린 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다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