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징계 취소했지만…法 "상품 선정에 심각한 문제"

"금융사지배구조법·시행령 불명확…입법 정비 필요"
법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 당국의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입법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의 금융상품 선정 절차에 심각한 흠결이 있는 등 금융기관 내부통제에 문제점이 드러나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27일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낸 문책경고 등 취소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하면서 "제언(提言)과 소회를 덧붙인다"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손 회장에 대한) 처분 사유 5가지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인정되지 않은 근본적 이유는 금융사 지배구조법과 시행령, 관련 고시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데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은 내부통제의 기준이 되는 내부규정을 마련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는데, 재판부는 이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금융 감독 당국이 문제점에 관한 책임을 사후에 묻기 위한 방편으로 내부통제 규범 마련 의무 규정을 이용하는 것은 법치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이에 따라 입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련 규정을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정비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금융기관이 이에 따라 충실한 내부통제규범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재판부는 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5가지 제재 사유 중 1가지는 인정된다며 "우리은행의 상품 선정 절차가 최소한의 정보유통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상품선정위원회를 마련하고도 9명의 위원에게 의결 결과를 통지하는 절차조차 없는 등 형식적인 내부통제에 그쳤다.

그 결과 상품선정위원회 의결 과정에서 투표 결과가 조작되거나 투표지가 위조됐고, 불출석하거나 의결을 거부한 위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처리됐다. 상품선정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면 출시되지 못했을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사건을 심리하면서 확인한 문제점들, 즉 내부통제 규범과 기준을 위반하거나 형해화(形骸化)한 금융기관 내부의 조직적 행태와 문제점들을 가급적 낱낱이 판결문에 담았다"고 밝혔다.

이어 "은행 직원이 DLF 상품을 판매하며 설명의무를 다했는가 하는 미시적 차원뿐 아니라 금융기관이 상품 선정·판매를 결정하는 과정과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의사결정 과정에 조직적 부당행위가 있었다는 거시적 관점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