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이송 약속 지킨 외교관 "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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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응 아프간 공사참사관…"공항서 협력자 탄 버스 기다릴 때 제일 힘들어"
아프간인 정착이 가장 고민…두 딸엔 "걱정할까 다시 들어갔다 이야기 안 해""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데리고 올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다."과거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이송 지원을 현지에서 지휘한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은 27일 화상 인터뷰에서 390명 전원을 데려온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2일 철수한 대사관이 임시로 자리한 카타르에서 선발대를 끌고 카불공항으로 다시 들어가 이송임무를 수행한 뒤 전날 1차로 들어온 아프간인 377명과 함께 군 수송기로 귀국했다.
김 참사관과 대사관에 파견된 경찰경호단장, 관계기관 직원, 아랍에미리트(UAE) 주재 무관 등 4명으로 구성된 선발대의 최대 과제는 공항 밖 아프간인들을 수송기가 기다리는 안으로 데려오는 것.처음에 협력자들은 도보 진입을 시도했으나 공항 주변을 피란민 수천 명이 에워싸는 상황에서 23일 하루에 고작 26명이 들어왔다.
이에 선발대는 미국이 제안한 '버스 모델'로 작전을 변경했다.
협력자들이 탄 버스 정보를 제공하면 미국이 탈레반과 접촉해 검문소를 통과하도록 하는 것으로, 선발대는 서둘러 버스를 확보하고 협력자들에게 새 계획을 공지했다.대형버스 여러 대가 한 곳에 있으면 눈에 띄니 너무 일찍 모여있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버스가 24일 오후 3시 30분 주출입구를 통과하도록 미군과 협의해뒀지만, 정문을 지키는 탈레반이 들여보내 주지를 않아 애가 탔다.
탈레반은 정부가 발급한 여행증명서가 사본이라고 문제 삼다가 결국 25일 새벽에야 진입을 허용했다.김 참사관은 버스 안 아프간 협력자들과 수시로 통화하며 공항에서 대기했는데, 전해들은 버스 안 상황은 너무 열악했다.
"사람들이 14∼15시간을 버스 안에 있었는데 에어컨이 안 나오고 밖이 안 보이게 (창문을) 색칠해 굉장히 불안해했다"면서 "덥고, 아이들은 울고, 동트고 (버스가) 들어올 때까지 꼬박 밤을 새웠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간 같다"고 회상했다.
몇 몇은 버스에서 탈진했고, 탈레반에 구타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항에는 항공기가 뜨고 내릴 뿐 상점도 문을 닫아 물도 음식도 구할 수 없었다.
김 참사관은 "15시간 갇혔다 나왔는데 물도 음식도 해줄 수 없어 미안했다"며 "저희도 마찬가지로 굶었고 한국에 오는 동안 모든 걸 같이 한다는 생각에 서로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외교부가 공개한 김 참사관과 주아프간대사관 직원이 포옹하는 사진은 버스 도착 직후에 찍혔다고 한다.
그는 "작년 8월부터 1년 같이하면서 매일 일한 정무과 직원"이라며 "그 친구뿐 아니라 많은 다른 친구도 반가워서 포옹했는데 그 친구가 특히 얼굴이 상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일 대사관이 완전히 철수하면서 현지인 직원들을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자기들을) 한국에 데려가는 걸로 아는데 철수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막막했다"며 "'한국으로 이송할 거다, 방법을 생각해볼게, 그래서 알려줄게' 그렇게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데리고 나오려면 어렵게 빠져나온 카불로 돌아가야 했지만,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저희가 들어가지 않으면 신원을 확인할 사람도 이를 대행할 사람도 없다"며 "저는 아프간인과 연락해야 하니 당연히 들어가고 경호단장도 자기는 '아이들도 크고 해서 괜찮다'고 했다. 나름대로 결연했다"고 말했다.
김 참사관의 아프간 근무는 처음이 아니다. 정부가 아프간 주민을 돕기 위해 운영한 지방재건팀(PRT)에서 2011∼2012년 참사관을 지냈다.
그는 "(이송자에) 그때 알았던 사람들도 있다"며 "통역하던 친구는 쿤두즈주 출신인데 탈레반이 점령하고 옆 발흐주로 옮겼다. 지난 몇 년간 두 개 주 열몇 곳을 이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프간인들의 정착 문제가 무엇보다 고민된다며 국민과 언론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임시수용시설이 있는 충북 진천군민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가족들은 김 참사관이 뉴스에 나올 때까지 계속 카타르에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성년인 큰딸과 중학교 2학년인 막둥이를 두고 있는데 걱정할까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은 몰랐다"며 "집사람하고 4년 전에 사별해서 딸만 둘이다. 지금 방학이라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 안 했다. 어제 와서 통화했더니 '아빠 카불 다녀왔냐'고 하더라. 이야기하면 걱정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아프간인 정착이 가장 고민…두 딸엔 "걱정할까 다시 들어갔다 이야기 안 해""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데리고 올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다."과거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이송 지원을 현지에서 지휘한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은 27일 화상 인터뷰에서 390명 전원을 데려온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2일 철수한 대사관이 임시로 자리한 카타르에서 선발대를 끌고 카불공항으로 다시 들어가 이송임무를 수행한 뒤 전날 1차로 들어온 아프간인 377명과 함께 군 수송기로 귀국했다.
김 참사관과 대사관에 파견된 경찰경호단장, 관계기관 직원, 아랍에미리트(UAE) 주재 무관 등 4명으로 구성된 선발대의 최대 과제는 공항 밖 아프간인들을 수송기가 기다리는 안으로 데려오는 것.처음에 협력자들은 도보 진입을 시도했으나 공항 주변을 피란민 수천 명이 에워싸는 상황에서 23일 하루에 고작 26명이 들어왔다.
이에 선발대는 미국이 제안한 '버스 모델'로 작전을 변경했다.
협력자들이 탄 버스 정보를 제공하면 미국이 탈레반과 접촉해 검문소를 통과하도록 하는 것으로, 선발대는 서둘러 버스를 확보하고 협력자들에게 새 계획을 공지했다.대형버스 여러 대가 한 곳에 있으면 눈에 띄니 너무 일찍 모여있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버스가 24일 오후 3시 30분 주출입구를 통과하도록 미군과 협의해뒀지만, 정문을 지키는 탈레반이 들여보내 주지를 않아 애가 탔다.
탈레반은 정부가 발급한 여행증명서가 사본이라고 문제 삼다가 결국 25일 새벽에야 진입을 허용했다.김 참사관은 버스 안 아프간 협력자들과 수시로 통화하며 공항에서 대기했는데, 전해들은 버스 안 상황은 너무 열악했다.
"사람들이 14∼15시간을 버스 안에 있었는데 에어컨이 안 나오고 밖이 안 보이게 (창문을) 색칠해 굉장히 불안해했다"면서 "덥고, 아이들은 울고, 동트고 (버스가) 들어올 때까지 꼬박 밤을 새웠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간 같다"고 회상했다.
몇 몇은 버스에서 탈진했고, 탈레반에 구타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항에는 항공기가 뜨고 내릴 뿐 상점도 문을 닫아 물도 음식도 구할 수 없었다.
김 참사관은 "15시간 갇혔다 나왔는데 물도 음식도 해줄 수 없어 미안했다"며 "저희도 마찬가지로 굶었고 한국에 오는 동안 모든 걸 같이 한다는 생각에 서로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외교부가 공개한 김 참사관과 주아프간대사관 직원이 포옹하는 사진은 버스 도착 직후에 찍혔다고 한다.
그는 "작년 8월부터 1년 같이하면서 매일 일한 정무과 직원"이라며 "그 친구뿐 아니라 많은 다른 친구도 반가워서 포옹했는데 그 친구가 특히 얼굴이 상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일 대사관이 완전히 철수하면서 현지인 직원들을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자기들을) 한국에 데려가는 걸로 아는데 철수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막막했다"며 "'한국으로 이송할 거다, 방법을 생각해볼게, 그래서 알려줄게' 그렇게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데리고 나오려면 어렵게 빠져나온 카불로 돌아가야 했지만,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저희가 들어가지 않으면 신원을 확인할 사람도 이를 대행할 사람도 없다"며 "저는 아프간인과 연락해야 하니 당연히 들어가고 경호단장도 자기는 '아이들도 크고 해서 괜찮다'고 했다. 나름대로 결연했다"고 말했다.
김 참사관의 아프간 근무는 처음이 아니다. 정부가 아프간 주민을 돕기 위해 운영한 지방재건팀(PRT)에서 2011∼2012년 참사관을 지냈다.
그는 "(이송자에) 그때 알았던 사람들도 있다"며 "통역하던 친구는 쿤두즈주 출신인데 탈레반이 점령하고 옆 발흐주로 옮겼다. 지난 몇 년간 두 개 주 열몇 곳을 이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프간인들의 정착 문제가 무엇보다 고민된다며 국민과 언론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임시수용시설이 있는 충북 진천군민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가족들은 김 참사관이 뉴스에 나올 때까지 계속 카타르에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성년인 큰딸과 중학교 2학년인 막둥이를 두고 있는데 걱정할까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은 몰랐다"며 "집사람하고 4년 전에 사별해서 딸만 둘이다. 지금 방학이라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 안 했다. 어제 와서 통화했더니 '아빠 카불 다녀왔냐'고 하더라. 이야기하면 걱정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