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금리 더 뛰기 전에…" 우량기업마저 자금확보 서두른다

한은, 추가 금리인상 예고…더 커지는 '신용 리스크'

삼바·포스코케미칼·한온시스템, 속속 회사채 발행 나서
영업益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 신용강등 대상 될 수도
초저금리 편승했던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속도 붙을 듯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 나와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한국은행이 초저금리 정책을 접고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우량 기업들도 서둘러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서면 시장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고 보고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착수했다. 하지만 회사채를 발행할 여건이 되지 않는 기업들도 적잖아 금리 인상이 기업 구조조정을 촉발할 것이라고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너도나도 회사채 발행 나서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기업 10여 곳이 다음주(8월 30일~9월 3일) 2조1000억~3조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창립 후 첫 공모 회사채를 내놓는다. 포스코케미칼 한온시스템 한국금융지주 등도 회사채 발행 대열에 합류한다. 한은이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연 0.75%로 인상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한 만큼 자금조달 여건이 팍팍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올 들어 이미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했다. 세계적 인플레이션 우려에다 완화적 통화정책 중단이 예견됐기 때문이다. 3년 만기 회사채 금리(AA-등급)는 지난해 3월 연 1.64% 수준에서 올초 연 2.19%로 뛰었다. 그 여파로 올 1월부터 7월까지 공모 회사채 발행 규모가 127조원으로 작년보다 18.7% 늘었다.

최근 들어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은 다소 주춤해졌다. 회사채 금리가 보합세를 나타낸 데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경제 여파가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시장에선 한은이 올 연말 한 차례, 내년 한 차례 등 두 차례의 추가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가 연 1.25%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날 현재 연 1.84% 수준인 3년 만기 회사채는 연 2%대 초중반으로 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있어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차(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있다”며 “일부 신용등급이 낮거나 전망이 어두운 기업들은 회사채 수요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 일각에선 그간 재무구조가 좋지 않았던 항공, 숙박, 자동차 부품, 엔터테인먼트 업종 등에서 신용등급 강등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음식·숙박업체들은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대출 연장 등이 제한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이 전했다. 한은의 올 1분기 기업경영 분석에 따르면 음식·숙박업체의 올 1분기 말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0% 미만이라는 뜻은 영업적자를 냈다는 뜻)은 -113.38%로 집계됐다. 영업이익률은 -3.62%를 기록했다. 음식·숙박업계가 1000원어치 매출을 올리면 36원20전 손실을 냈다는 의미다.

기업 구조조정 벌어질까

신용등급 강등과 함께 기업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연 0.5%인 초저금리에 편승해 이자비용을 근근이 내면서 버텨낸 기업이 적잖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부터 지금까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해선 원금과 이자 상환이 유예됐다. 9월에도 한 차례 더 유예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년엔 이 같은 조치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금리 인상 과정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 정책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좀비기업이 빠르게 퇴출되지 못하면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성장 여력을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생산성 둔화 요인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좀비기업 비중이 2010~2018년 늘어나지 않았다면 일반 기업의 노동생산성은 평균 1.01%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선영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투명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을 조속히 퇴출해야 한다”며 “재무 상황, 보유 기술의 차별성을 비롯한 기업 특성을 반영한 구조조정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산업은행과 시중은행이 앞으로 기업으로부터 빚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김은정/이현일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