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교회부터 '미라클 작전'까지…한국 외교 송두리째 바꾼 아프간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국내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 가족의 한 어린이가 지난 26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임시 방역 시설로 가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피란민 390명이 지난 25~26일 이틀에 걸쳐 국군 수송기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한국대사관에서 오랫동안 일한 한 아프간 여성 A씨는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에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같이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온 아프간인들은 지난 수년간 한국대사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등 한국 정부와 협력한 사람들입니다. 정부도 이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로 수용하기로 했습니다.한국이 해외 분쟁 지역에 군 자원을 투입해 자국민이 아닌 인도적 이유로 외국인들을 구출한 일은 유례가 없습니다. 일명 ‘미라클 작전’입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유례가 없던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01년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간에 비전투부대를 처음 파병한 이후 아프간은 21세기 한국의 외교사(史)에서 빠질 수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14년 전 아프간 일…여권법까지 바꿨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외신 상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07년 7월 19일,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피랍됩니다.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간에 선교를 하러 갔다가 인질로 붙잡힌 것입니다. 탈레반은 다음날 한국군의 즉각 철군을 요구합니다. 정부 대책반이 즉각 아프간 현지로 날아갑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협상 시한을 연장하던 탈레반은 피랍 엿새만인 같은달 25일 목사 배 모씨를 살해했고, 31일에는 같은 선교단의 심 모씨까지 살해합니다. 다음달 10일에서야 탈레반은 처음으로 한국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습니다. 탈레반이 살해한 두 명을 제외한 21명의 인질들은 피랍된지 42일이 지나서야 전원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비밀리에 특전사 대(對)테러요원들까지 현지에 투입했고, 협상대표인 국가정보원 요원의 신원이 노출됐을 뿐 아니라 거액의 금전적 대가까지 지불합니다.

인질들이 한국으로 귀국한 같은해 9월 1일, 로이터통신은 “몸값으로 2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87억원) 이상을 받았으며, 그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통신망을 재정비해 더 많은 자살공격을 위한 차량을 사들일 예정”이라는 탈레반 고위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합니다. 알자지라방송은 당시 한국 정부가 탈레반에 2000만파운드(약 378억원)을 지불했다고 보도하기까지 합니다. 정부는 당시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후에도 외신에서는 탈레반이 한국 정부로부터 몸값을 받은 뒤 무기를 사들였다는 보도까지 내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결국 이 사건은 여권법에 여행 금지 국가 방문시 처벌 규정이 생기는 계기가 됩니다. 여권법 제26조에 따르면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된 걸 알면서도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해당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사람들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처해집니다.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 사건이 여행 금지 국가에서 벌어진 국민들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3박 4일' 급박했던 軍 수송기 투입 작전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탑승한 우리 공군의 KC-330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가 26일 오후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범과 협상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결국 모두 구출하지 못한 아픈 과거를 가진 한국은 14년 뒤 탈레반으로부터의 처벌이 예상되는 아프간인들을 국내로 이송해오는데 성공합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지난 25일 “정부는 우리와 함께 일한 동료들이 처한 심각한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비슷한 입장에 처한 아프간인을 다른 나라들도 대거 국내 이송한다는 점 등을 감안해 8월 이들의 국내 수용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샘물교회 사태 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비밀리에 공수부대를 파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라클 작전’ 역시 비밀리에 펼쳐집니다. 군은 지난 23일 60~70명의 인력과 함께 KC-330 공중급유기 한 대, C-130 수송기 두 대를 중간기착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보냅니다. 군 수송기들은 23일부터 아프간 카불과 이슬라마바드 사이를 왕복하며 ‘협력자’ 아프간인들을 이송합니다. 사상 초유의 이 작전은 이달 초부터 비밀리에 진행됐습니다. 정부는 외교부·법무부·국방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렸습니다.원래 정부 계획은 이달 말 외국의 민간 전세기를 이용해 이들을 국내로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카불이 순식간에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며 모든 민항기의 운항이 중단됩니다. 결국 정부는 군 수송기를 직접 투입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합니다. 지난 16일 끝내 철수하지 않던 한국인 한 명을 데리고 급박하게 카불을 떠나 카타르로 철수했던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직원을 포함해 정부 관계 4명이 22일 카불에 들어갑니다. 사실상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는 카불 공항에서 이들이 비행기를 타기까지 신원 조회, 탑승 등 모든 절차는 이 네 사람의 손에 달리게 됩니다.

탈레반, 공항선 채찍질, 안전 약속한 버스에선 구타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이 27일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이 중 한 사람은 김일응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이었습니다. 김 공사참사관은 외교부 본부로부터 긴급히 대사관 임시 폐쇄와 철수 지시가 내려졌을 당시 최태호 대사와 함께 현지에 남아있던 재외국민의 철수를 돕기 위해 남았던 최후 3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27일 취재진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탈출자들은) 그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창고같이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고, 한 사람은 버스에 들어온 탈레반에 의해 구타도 당한 모양”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아프간인들은 390명입니다. 이 중 26명은 지난 23일 도보로 공항 진입에 성공하고 나머지 364명은 다음날 50인승 버스 4대를 이용해 공항으로 출발합니다. 국내에 온 아프간인들 중 생후 1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생아가 3명, 10세 이하의 영유아가 190여명에 달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김 공사참사관은 “탈레반이 버스를 막아 사람들은 에어컨도 안 나오고 밖도 보이지 않게 칠해진 버스에서 14~15시간을 갇혀 있었다”며 “탈레반은 이들의 여행증명서가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고 시비를 걸었고 내가 공항 밖으로 나가겠다 하니 그제서야 (버스를) 통과시켜줬다”고 말합니다.
카불로 복귀해 아프간인 이송 지원을 지휘하고 있는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한 아프간인과 포옹하고 있는 장면./ 외교부 제공
김 공사참사관은 미라클 작전이 언론에 공개되며 우여곡절 끝에 공항으로 들어온 아프간인을 끌어안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던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인터뷰 중 “14시간 동안 갇혀 있다 내리는 사람들 얼굴이 사색이 돼있었다”고 설명하며 감정이 북받쳐 오른듯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도움을 줬던 이들이 한국의 도움으로 무사히 카불을 무사히 탈출한지 사흘 만에 아프간에서는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최소 100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탈출할 당시에도 테러 첩보는 이미 확인됐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탈출자들 중 제일 먼저 도보로 공항에 들어온 26명이 이용한 게이트가 바로 이번 테러가 발생한 애비게이트였습니다. 당시 수 천명의 피란민이 몰려있던 이곳에서 탈레반은 채찍까지 이용해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 천명의 인파 속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KOREA’라 적힌 종이 한 장으로 이들을 찾았습니다.

'제 2의 흥남철수'…새로운 선례가 생겼다

지난 26일 입국한 한 아프간 어린이가 김포의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테러단체로부터의 집단 피랍사건부터 사상 초유의 외국인 구출 작전까지, 아프간은 한국 외교사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선례들이 아프간에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향후 이들 390명의 국내 정착도 한국 사회가 처음 맞닥뜨리는 선례가 될 전망입니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장기체류 자격인 거주(F-2) 비자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6일 입법예고했습니다. F-2 비자는 국내 체류 가능 기간이 최장 5년으로 연장이 가능하고 취업과 학업에 제한이 없습니다. 심사를 거치면 영주권(F-5)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체류 문제는 한동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입니다. ‘난민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27일 현재 2만6000명을 넘어서는가 하면, 비슷한 작전을 펼치는 여러 나라 중에서도 거의 유일한 대상자 전원의 안전한 구출 성공이 ‘선진국이 됐다는 징표’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불과 70여년 전 흥남에서는 자유를 찾아 미군 함정에 10만여명의 피난민이 몸을 실었습니다. 미군의 도움으로 이들은 공산 치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탈레반을 피해 온 아프간인들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느 사안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국내 입국에 대한 여론은 엇갈립니다. 혐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아내와 사별한 뒤 남은 두 딸에게는 알리지도 못한 채 이들에게 ‘꼭 데리러 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불로 떠났던 김 공사참사관의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부정적 여론도 충분히 무슨 말씀인지 알고 무슨 걱정인지 이해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써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 상황도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감안하면서 (수용)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들이 잘 정착해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저희가 예전에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일원으로서 기여하는 역할 충분히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