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제보] "결혼·보상금 미끼에 수억원 피해"…미군 사칭 로맨스스캠 기승


해외 파병 미 군의관 사칭…친밀감 형성한 뒤 거액 요구

[※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대구에 거주하는 최정혜(가명·50대)씨 제보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연합뉴스=서울) 성진우 인턴기자 = "금 배송료 3천만 원을 송금해주면 나중에 더 큰 금액을 돌려주고 슈퍼마켓도 차려준다고 했어요."
최정혜씨는 4년 전 SNS를 통해 연인행세를 하며 돈을 갈취하는 '로맨스 스캠(scam)' 피해를 입었다.
자신을 해외 파병 중인 미 군의관 '크리스반'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접근해 와 한동안 연락을 이어갔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자 크리스반은 파병 보상금으로 100억 원 상당의 금을 받았다며 한국으로 금을 보낼 테니 항공 배송료를 낸 뒤 맡아달라고 최 씨에게 부탁했다.
최씨가 의심 없이 거액의 배송료를 송금했지만 금은 예정된 날짜에 배송되지 않았다.
최씨는 "크리스반은 자신이 한국에 들어가면 결혼하자고 말했다"며 "사기당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 채 4년 넘게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혼과 파병보상금 등을 미끼로 한 로맨스 스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로맨스 스캠은 로맨스와 신용 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의 합성어로, 주로 해외 파병 군인이나 해외 거주 전문직을 사칭해 온라인으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 사용된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국제범죄 신고 중 로맨스 스캠 비율은 2018년 8%에서 올해 1분기 12%까지 꾸준히 높아졌다. 이 기간 피해자는 43명, 피해 금액은 26억3천만 원에 달했다.
특히 여성 대상 로맨스 스캠의 경우 피해자들이 사기당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거나 협박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 규모가 더 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금·현금 사진 보여주며 돈 요구…여성 피해자는 협박도 당해
로맨스 스캠 조직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범죄 대상을 찾았다.
이들은 매력적인 제삼자 사진을 도용해 예멘, 이라크 등에 파병된 미군으로 가상 프로필을 꾸민 뒤 온라인에서 무작위로 대화를 걸었다. 한국계 미국인을 사칭하거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며 접근하기도 했다.
대화에 응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후 현지에서 얻은 현금, 현물을 맡아달라며 한국행 배송료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돈을 갈취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신분증 사진과 금, 돈뭉치 사진 등으로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작년 12월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한 조윤정(가명·50대)씨는 "유엔이 예멘 현지에서 미 군의관으로 봉사한 대가로 350만 달러(약 41억 원)를 줬는데 보관할 곳이 없다고 했다"며 "배송료로 7천만 원을 요구해 송금해줬다"고 말했다.
최 씨는 "나와 비슷한 피해자 중 3억 원을 사기당하고도 믿기지 않아 공항을 전전하는 사람도 봤다"며 "이건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여성 대상 로맨스 스캠은 협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더 심각하다.
이들은 범행 과정에서 받아낸 여성 피해자들의 인적 사항을 가지고 만약 신고하면 보복하겠다고 협박했다.
조 씨는 "배송회사에 보낼 정보라고 해서 주소, 전화번호 등 인적 사항을 써준 것이 가장 큰 실수"라며 "경찰에 신고하면 '24시간 안에 너를 끌고 가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부산에 있는 '오 군(미스터 오)'이 널 죽일 것이라는 식으로 협박을 해왔다"고 전했다.

◇ "뿌리 뽑기 어려운 로맨스 스캠…사회적 인식 변화 필요"
로맨스 스캠 조직은 대부분 해외에서 활동하고 범행에 대포폰, 대포통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에서 로맨스 스캠 사기행각을 벌인 외국인 사기 조직 총책과 인출책이 검거됐지만 여전히 많은 사건이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상황이다.
당시 검거를 주도한 이충환 경기파주경찰서 사이버팀 경감은 "최근 검거된 조직도 전체의 극히 일부"라며 "현재 국내외에 다른 조직들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과 연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전히 한국 사회는 외국인과의 연인 관계를 공공연히 드러내기 쉽지 않은 사회"라며 "특히 로맨스 스캠에 당한 여성 피해자들은 연애 과정과 피해 사실 등을 타인과 의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쉽게 표적이 된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SNS 사용자들도 온라인에서의 비대면 만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jw020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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