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장이란 생각 안든다"…재택하느라 입사 1년 지나도 서먹

직장人이 흔들린다

한경·리멤버서베이 공동 기획
코로나가 바꾼 직장 풍속도

직장생활 가장 큰 애로는
"비대면 따른 인맥관리 어려움" 49%

사소한 궁금증 물어볼 동료 없어
외딴섬에서 홀로 일하는 것 같아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입사한 직장인 이모씨(27)는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직장 동료의 얼굴을 잘 모른다. 조를 나눠 재택근무를 번갈아 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인사 한 번 못한 동료도 있다. 그나마 업무 처리를 위해 자주 연락하는 동료와는 메신저 대화나 전화 통화로만 소통한다. 이씨는 “소속감은커녕 ‘우리 회사’ ‘내 직장’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며 “연봉을 올려준다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고민 없이 자리를 옮길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 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기업은 ‘철새 직장인’들을 붙잡는 데 애를 먹고, 직장인들은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택을 고집하는 사원과 ‘나만 출근하냐’는 중간 간부들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교육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신입 사원들은 역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사이에선 “인사관리가 최대 난제”라는 말들이 나온다.

“외딴섬에서 일한다”

29일 한국경제신문과 리멤버서베이가 공동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 1200명 중 40.9%(491명)가 ‘직장 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비대면으로 인한 인맥 관리의 어려움’을 꼽았다. 직장 내 소통이 단절되면서 업무를 배우거나 익힐 기회가 부족해져 불안감을 느끼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보고 형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 외딴섬에서 홀로 일하는 것 같다”는 하소연이 빗발친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비대면의 역설’을 여실히 보여줬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길어질수록 인맥 관리 혹은 네트워킹 등 대면 비즈니스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인맥 단절’이 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인맥 관리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41.8%) ‘매우 많은 영향을 준다’(18.8%)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와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응답은 각각 12.6%, 3.0%에 그쳤다.

커지는 위기감…애사심 확보 전쟁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수요는 이직 열망과 연결돼 있다. 현재 속해 있는 기업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다 보니 타사나 다른 직종으로 눈을 돌린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이 같은 ‘인재 무브(이동)’ 현상은 공채, 정규직 등 전통적인 기업 고용 관행을 더 빨리 무너뜨릴 전망이다. HR(인적자원) 전문가들은 기업이 구성원들의 애사심(로열티)을 우려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윌리엄 오우치 미국 UCLA 교수는 “특출한 성과를 올리는 미국과 일본 기업의 공통점은 직원들의 기업에 대한 애사심과 사기가 높았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보기술(IT)·게임 업계가 직원 로열티를 끌어올릴 방안 중 하나로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스톡옵션은 기업이 직원에게 자사주를 일정 가격으로 매수할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 주가가 상승할수록 자사주를 보유한 직원도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기업과 직원 간 유대감을 강화하고 책임의식을 높이는 데 스톡옵션만한 게 없다”며 “직원들이 회사 성장을 위해 의욕을 갖고 일하도록 독려하는 장치로 여러 기업이 도입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새로운 인사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글, 골드만삭스 등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재택근무자의 임금을 감축함으로써 출근자를 위한 인센티브(동기 부여책)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 조치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진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영감을 불러오는 창업자의 말 한마디가 임직원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요즘엔 그 같은 방식으로는 애사심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