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증요법식 유통 규제의 역설

김형호 생활경제부장
“물류센터 지하층도 용적률에 포함시켜야 한다.”

지난 6월 경기 이천시 덕평의 쿠팡 물류센터 화재 이후 소방규제뿐만 아니라 용적률까지 손보겠다는 법안이 국회에서 쏟아지고 있다. 백혜련·송석준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번 기회에 대형 물류센터의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특히 백 의원이 발의한 ‘화재안전 기준 강화 5법’은 용적률 계산에서 빠졌던 지하 공간까지 포함시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산업 격변에 갑을 바뀌고

예를 들어 대지 1만㎡ 물류센터의 용적률이 100%라면 지금은 각 층의 바닥 면적이 5000㎡인 2층(지하 제외) 건물을 지을 수 있지만 개정안대로라면 지하층을 포함해 1층만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덕평 화재를 계기로 대형 물류센터의 화재 관련 기준을 전면 점검해야 한다는 논의가 용적률 규제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업계는 “현실을 모르는 법안”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초대형화 추세인 물류센터의 화재 방지 조치로 용적률을 들고나온 것은 번지수가 한참 잘못된 대응이라는 논리다. 화재 방지 효과보다 물류 경쟁력 약화로 인한 비용 부담이 소비자 편익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란 반론이다. 일각에선 문제의 해법을 규제로 풀려는 전형적인 ‘입법 만능주의’ 접근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국회의 입법 속도전은 해외에서도 놀랄 수준이다. 지난 25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앱에서 특정 결제방식만 요구하는 것을 막는 일명 ‘구글 갑질차단법’이다. 당장 국내 정보기술(IT)업계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반면 구글, 애플 등 해당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찾아다니며 “미국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조치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고 호소하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 미국 내에서도 빅테크 기업 견제론이 힘을 얻고 있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섣불리 중재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이 법안은 30일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시된다. 시장에 미치는 효과에 앞서 인앱결제 강제를 차단하는 법안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입법화된다는 점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도 주목하고 있다.

예상 못한 부작용 반복

사회적 갈등을 입법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은 최근 10년 새 두드러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입법 취지와 다른, ‘사이드 이펙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전통상권 보호를 위한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출점 제한, 의무 휴일 및 영업시간 제한(0~8시)을 담은 2010년의 유통산업발전법이 10여 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당초 법안 취지와 달리 골목가게들은 10년 새 대부분 편의점 3사의 프랜차이즈로 전환했다. 대형마트가 손발이 묶인 시간을 쿠팡, 마켓컬리 등 새벽배송 업체들이 파고들었다. 유통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대형마트 3사는 실적 악화로 지난 2분기 사상 처음으로 편의점 3사에 분기 매출이 역전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롯데마트 등 한때 잘나가던 대형마트들은 매년 전국 지점을 폐쇄하고 있다. 쿠팡 등 플랫폼 기업과 경쟁하는 대형마트들은 이젠 새벽시간의 온라인 배송이라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갑이 10년 만에 을의 처지로 내몰린 셈이다. 법안을 통과시킬 때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유통산업법은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에 발의돼 있어 10년 만에 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눈앞의 현상만 보고 진단하는 대증요법식 규제 입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