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전의 경영과 과학] 'AI 퍼스트'로 R&D 경쟁력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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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R&D에 대한 정부 지원 끊는 것이지난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만든 ‘미래혁신 2030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정책 분야 전문가인 위원들이 각자 두 가지 정도 한국 연구개발(R&D)의 방향에 대한 아젠다를 제시했는데, 필자는 모든 국가 과학기술 연구소에 ‘인공지능(AI) 퍼스트 R&D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과, 대기업의 R&D를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지할 것을 제안했다. 아쉽게도 둘 다 아젠다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규제 추가하는 것보다 생태계 형성에 바람직
산학 협동 중요하지만 산학 간 경쟁도 필요
이경전 <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 >
‘대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는데 왜 국가 재정에서 R&D 지원을 받지 못하는가’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겠지만, 2019년 보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2013년부터 5년간 대기업 R&D를 지원한 과제 중 약 3분의 2가 사업화 수익이 ‘0’이었고, 그 규모는 5000억원에 달했다. 대기업이나 거대 플랫폼에 새로운 규제를 하면 그들은 더 강화된다. 그들을 위한 벽 또는 성(城)이 하나 더 생겨서 도전자에게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길 뿐이다. 규제를 추가하는 것보다 차라리 정부 지원을 끊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정부가 대기업에 R&D 지원을 중단하면 대기업은 정부 자금이 탐이 나서 시작하는 R&D보다는 자체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R&D에 집중할 것이고, 학계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R&D를 직접 지원하거나 투자해 시너지를 내는 방법에 더욱 눈을 돌릴 것이다.이로써 바람직한 R&D 생태계 형성을 유도할 수 있으며, 대기업에 도전하는 새로운 꿈나무 기업을 정부가 육성해 이들을 시장에서 경쟁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대기업조차도 정부 지원을 받아 신입 R&D 사원을 뽑는 일을 중지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스타트업의 고급 인력 부족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달 AI를 활용해 단백질 해독에 성공한 미국 워싱턴대와 영국 딥마인드가 거의 동시에 세계 최고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각각 논문을 실은 것은 과학기술 연구에서 AI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특히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의 연구 주도자가 국내 박사 출신인 백민경 박사후연구원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20년 전 노틀담대 앨버트 바라바시의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 연구를 역시 국내 박사 출신 정하웅 KAIST 교수가 주도한 사례의 데자뷔이기도 하다.
딥마인드는 기업, 워싱턴대는 학교이고, 딥마인드는 AI 퍼스트, 워싱턴대는 기존 학문(화학) 기반이라는 대조도 흥미롭다. 딥마인드가 작년에 알파폴드 연구논문을 발표하고도 소스를 공개하지 않자 이에 실망한 학계에서 추격 연구를 하고 소스를 공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학계의 추격에 압박을 받은 기업이 서둘러 논문을 게재하고 소스코드를 오픈한 것도 재미있는 사례다. 역시 경쟁이 필요하다. 산학 간 경쟁으로 세계 과학계가 혜택을 본 사례다. 산학협동도 중요하지만 산학경쟁도 필요하다.워싱턴대의 로제타폴드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도 과학기술 연구에서 AI 퍼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워싱턴대의 로제타폴드를 세계 140여 개 연구그룹에서 다운로드했다고 하니, 기존 학문 기반 연구 그룹이 AI 퍼스트 연구 집단의 성과물 알파폴드2를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을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과학발전 관점에서는 딥마인드의 기여를 충분히 인정하나 딥마인드는 연구소도 학교도 아닌 회사이므로, 경영학적으로 딥마인드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돈이 되는 걸 해야 하는데, 딥마인드가 어떻게 알파고, 알파폴드 등을 돈으로 바꿔낼 것인지 더 불투명해진 것이다. 과학계가 턱밑까지 쫓아와서 공개해버리면 수익의 지속을 위한 진입장벽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딥마인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알파고, 알파폴드로 이어지는 기술이 과연 일반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으로 가는 길인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각종 과학기술 연구소, 대학들이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AI 퍼스트로 혁신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