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더디고 '눈덩이 적자'…비틀대는 자율주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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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까지 들이받은 테슬라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이끌어온 자율주행자동차 업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잇단 차량 사고에 규제당국의 조사를 받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기술 개발 정체와 경영난을 겪는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은 잇따라 회사를 매각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벤처캐피털(VC)의 투자와 관심도 줄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업계가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美 규제당국 '오토파일럿' 조사
수익 악화 못견딘 우버·리프트
스타트업 헐값에 팔고 사업 포기
상용화 늦어져 손실 감당 못해
웨이모는 CEO·경영진 줄퇴사
기대보다 저조한 성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최근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인 오토파일럿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18년부터 발생한 잇단 사고 때문이다. 오토파일럿 관련 의심 사고는 11건에 달한다.지난 28일에는 테슬라 차량이 오토파일럿 기능을 켠 상태로 경찰차를 들이받기도 했다. 오토파일럿이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문제가 발견되면 NHTSA가 강제 리콜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미국 차량호출업체 우버와 리프트는 경영난이 지속되자 자율주행 부문을 연달아 매각했다. 우버는 지난해 자율주행 사업을 경쟁사 오로라에 40억달러를 받고 팔았다. 리프트는 지난 4월 자율주행 부문을 5억5000만달러라는 헐값에 도요타에 넘겼다. 상용화까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코로나19 직격탄까지 맞자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알파벳(구글 모회사)의 자율주행자동차 부문 계열사인 웨이모도 흔들리고 있다. 2018년 1750억달러로 평가받던 웨이모의 가치는 3년 만에 300억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상용화까지는 첩첩산중
자율주행 업체들이 비틀거리는 이유는 기대에 비해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어서다. 과거 자율주행 업계는 ‘2020년대 초반까지 운전자 없는 시대가 올 것’으로 자신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2020년에는 로보택시(무인택시) 100만 대가 도시에 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아직 상용화된 로보택시는 없다. 미국자동차공학회가 분류한 자율주행 단계 중 테슬라는 2단계에 그친다. 자율주행 기술은 0~5단계로 나뉘는데 2단계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 수준이다. 4단계부터 특정 조건 아래 운전자 개입 없이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4단계 자율주행을 제공하고 있다는 웨이모도 차량 600대 정도만 시험 운행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존 크라프칙 CEO를 포함해 경영진이 줄줄이 퇴사했다. 기술 개발이 지지부진한 데다 적자도 불어나서다. 웨이모는 지난해 35억달러를 투자받은 데 이어 지난 5월 25억달러를 추가로 조달했다.영국 교통 해설가인 크리스티안 볼마르는 이른바 ‘홀본 문제’가 자율주행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5시에 런던 홀본역 밖으로 보행자가 도로에 쏟아지면 어떤 자율주행차도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다. 가장 기술력이 앞선다는 웨이모조차 자전거, 보행자 등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위주로 재편 가능성
앞으로 실리콘밸리 자율주행업계는 스타트업이 줄어들고 자금력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자율주행에 대한 투자 관심이 줄었다”며 “새롭게 나오는 자율주행 스타트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은 최근 수년간 줄줄이 매각됐다. 아마존은 지난해 자율주행 스타트업 죽스를 인수합병(M&A)했다. 제너럴모터스(GM) 자회사인 크루즈는 지난 3월 자율주행 스타트업 보야지를 인수했다. 벤처투자사 트럭스의 라일리 브레넌 파트너는 “충분한 투자 여력을 지닌 대기업들이 자율주행 스타트업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며 “앞으로 업체 간 M&A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