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주둔 끝났다"…1조弗 쏟아붓고도 20년전 아프간으로 회귀
입력
수정
지면A10
미군 아프간서 완전히 철수미군이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작된 20년간의 아프간 전쟁이 공식 종료됐다. 아프간을 장악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진 미군의 철군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독립을 선언했다. 극단적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험은 해소되지 않는 등 여러 과제를 남겨둔 채 아프간 전쟁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군 종료 시한 앞당겨 완료
장갑차 등 첨단무기 다 놓고와
2주간 12만3천명 대피시켰지만
현지인·미국인 수백명 구출못해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전쟁"
무리한 철수에 비난여론 거세
바이든, 취임이후 지지율 '최저'
시한 1분 앞두고 대피 완료
미군의 마지막 수송기가 아프간 카불공항을 이륙할 때까지 철군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 미군은 테러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첨단 무기를 카불공항에 남겨두거나 폐기하고 급박하게 오후 11시59분 철군을 마무리했다. 로켓포와 박격포를 탐지해 기관총으로 요격하는 자동 방공요격체계(C-RAM)와 지뢰방호장갑차 70대, 항공기 73대 등이 대표적이다.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병사들을 보호하는 게 장비를 회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며 “그런 장비들을 군사 용도로 다시 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강조했다.계획보다 하루 앞당긴 철군이 완료되자 미 국방부는 철수 종료를 발표했다. 곧바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7일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을 통해 12만 명이 넘는 미국과 동맹의 시민을 대피시켰다”며 “아프간에서 20년간의 군대 주둔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31일 대국민 연설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미 국무부는 아프간 주재 대사관 운영을 중단하고 카타르로 관련 업무를 이관한다고 밝혔다.아프간 철군을 지휘한 매켄지 사령관은 브리핑을 통해 “미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인 대피 작전이었다”고 자평했다. 하루 최대 1만9000명을 이동시키는 등 지난 14일부터 미군과 연합군이 12만3000여 명의 민간인을 카불공항에서 대피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100명 이하의 미국인이 아프간 탈출을 희망했지만 시간 안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인과 아프간 현지인들이 원하면 아프간을 떠날 수 있게 계속 도울 것”이라며 “그들에 대한 우리의 약속엔 데드라인이 없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 작업이 쉽거나 빠르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다”며 대피 작업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 미국에 협력한 현지 조력자들의 탈출은 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아프간
아프간전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 전쟁으로 기록됐다.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지목했다. 당시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에 빈라덴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아프간을 침공했다. 이후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아프간에 친미 정권을 세우고 2011년 5월 빈라덴까지 사살했지만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아프간 산악지대를 활용한 탈레반의 게릴라전과 테러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전쟁 기간이 길어지자 비용과 인명 피해가 커졌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 희생자는 약 17만 명에 달한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달러(약 1165조원)에 이른다.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전 종전을 선언했지만 숱한 해결 과제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탈레반은 겉으로 여러 정파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현지 조력자 보복에 나설 공산이 크다. 예전처럼 여성 인권을 탄압하며 공포정치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탈레반은 중국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이 당분간 아프간 문제에서 손을 떼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IS의 아프간 지부인 IS-K에 대한 응징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수 정책에 대한 미국인의 지지율은 38%에 불과했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조사한 결과다.
AFP통신은 “미국이 아프간을 재건하기 위해 많은 돈을 썼지만 20년간 이어진 잔혹한 전쟁이 탈레반의 집권으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AP통신은 “미군 역사에서 아프간 전쟁은 엄청난 실패로 기억될 것 같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박상용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