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열풍에 코벤펀드 인기…제로금리 CB 발행도 '봇물'
입력
수정
코벤펀드, 벤처신주·메자닌 의무편입에공모주 열풍에 코스닥벤처펀드가 인기를 끌자 제로금리 전환사채(CB) 발행이 늘어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가 벤처기업 신주나 메자닌(CB·BW 등)을 의무적으로 편입해야 하다 보니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CB 발행 '쑥'…올해 벌써 6.6조원
제로금리에 콜옵션 붙은 CB도 늘어나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발행된 CB는 총 6조6636억원어치다. 지난해 한 해 통틀어 발행된 CB(6조4150억원)보다 더 많았다. CB 중에서도 금리가 0%인 전환사채가 적지 않았다. 8월 CB(비상장·SPAC 제외)를 발행한 42곳 중 16곳(38%)이 표면·만기금리가 모두 0%였다. 지난해 같은달엔 30곳 중 7곳(23%)만 CB의 전환사채를 발행했으니 그 비율이 증가한 것이다.CB는 만기 때까진 약속된 이자를 받다가 만기가 오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투자자에게 주식 전환 권리를 주는 대신 이자가 낮은 편이다. 채권을 발행하자니 신용등급이 낮거나, 대출을 받자니 금리가 높을 때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또 당장 신주가 늘어나는 유상증자와 달리, 만기 전까진 신주가 늘지 않아 지분 희석을 피하려는 회사가 선호하기도 한다.
CB의 표면·만기금리가 모두 0%일 경우 회사에선 공짜로 돈을 조달하는 게 된다. 반대로 투자자는 만기 때 주가가 올라야만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이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마저도 어려운 상황이 적지 않다. 콜옵션이 붙은 CB도 같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지난달 표면·만기금리가 0%로 발행됐던 CB 16개 중 13개에 콜옵션이 붙어있었다. 콜옵션은 발행사가 CB 만기 전에 투자자로부터 CB를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다. 제로금리에 콜옵션까지 붙어 있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CB를 사 봐야 이자도 못 받고 만기때 주식으로 바꿔서 시세차익도 못 올리게 된다.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에 모든 주식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순 없으나, 발행금액의 50%까지도 행사가 가능한 콜옵션이 붙은 CB가 늘고 있다. 지난달 제로금리에 CB를 발행한 바이오톡스텍, 라파스, 와이제이엠게임즈 등 3사는 콜옵션 한도가 발행금액의 50%였다.
증권가에선 코스닥벤처펀드의 범람이 이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8월 말 코스닥벤처펀드의 순자산은 1년새 약 1.7배 증가한 1조4934억원이다. 코스닥벤처펀드는 공모주 물량의 30%를 우선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경쟁률에 지친 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해 우회투자하면서 덩치가 커졌다. 이때 코스닥벤처펀드가 공모주를 우선배정 받으려면 펀드의 15%를 벤처기업 신주나 메자닌으로 채워야한다. 펀드규모가 작다면 공모주만 받아도 15%를 채울 수 있지만 펀드 크기가 커지면 커질 수록 메자닌을 채워야 하는 압박이 커진다. 제로금리에 콜옵션이 붙은 CB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사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의 CB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부 한계기업까지 이 수요에 편승해 CB를 발행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며 "실질적 자금수요에 따른 게 아닌 펀드 편입을 위한 가수요에 의한 CB 발행 증가는 시장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