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FDA, 부스터샷 시행일 잡아놓고 '하라고 해' 뒷북 자문회의

개시 사흘 전에야 개최 예정…의미없는 요식행위 논란
실효성·국제사회 배신 논란…일부 백악관 월권 지적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스터샷의 타당성을 묻는 자문단 회의를 이달 중순에 열기로 했다.미국 정부가 부스터샷 접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시점 직전에 회의가 열리는 까닭에 논란이 많은 백악관의 방침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FDA는 부스터샷 시행 여부를 주제로 삼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 회의를 17일 개최할 계획이다.

대중에 공개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제약업체 화이자,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부스터샷과 관련한 자료가 검토된다.부스터샷은 백신의 면역증강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애초 완료 기준으로 승인된 횟수를 넘어 시행하는 추가 접종을 뜻한다.

백신 사용과 관련한 승인은 절차적으로 FDA 심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자문단의 권고를 거쳐 결정된다.

문제는 미국의 부스터샷 시행이 사실상 이미 결정돼 구체적 일정까지 잡힌 상황에서 자문단 회의가 열린다는 점이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스터샷을 맞으라고 지난 18일 미국 국민들에게 촉구했다.

미국 보건당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접종을 마친 뒤 8개월이 지난 이들에게 오는 9월20일 시작되는 주부터 부스터샷 접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론 이는 FDA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승인을 전제로 한 발표였다.그러나 부스터샷을 둘러싼 의문과 반대가 많은 만큼 뒤늦은 자문단 회의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관측된다.
실제로 자문단 내에는 코로나19 백신의 중증예방 효과가 이미 데이터로 입증됐음에도 이 시점에 부스터샷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위원도 있다.

실효성뿐만 아니라 부스터샷 때문에 선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의 백신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미국 안팎에서 쏟아진다.

WP는 자문단 의제가 자료 검토이지만 부스터샷이 미국에 왜 필요한지, 다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의무는 무엇인지도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오는 17일 회의에서 자문단이 부스터샷 시행에 반대 목소리를 낸다면 바이든 정부의 계획은 어색한 형국에 몰릴 것으로 관측된다.

자문단 권고는 FDA의 승인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만 강제력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앞뒤가 뒤바뀐 뒷북 회의를 두고 백악관의 월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이날 FDA에서 백신연구심의실을 이끌던 매리언 그루버 실장과 필립 크로스 부실장이 올가을에 퇴직한다고 밝혀 그런 논란이 커졌다.

수십년간 백신을 다뤄온 이들 베테랑 관리들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백신의 개발과 보급에 힘을 보탰다.

소식통들은 그루버는 퇴직이 예정됐지만 크로스의 선언은 의외라며 두 인사가 자체적으로 자료를 심의해 독립적 결정을 내리는 FDA의 고유권한을 백악관과 몇몇 기관들이 침해했다는 데 좌절감이 컸다고 전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델타변이의 확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도 투명성을 제고할 절차를 갖추려고 한다는 점만큼은 호평하는 견해도 있다.제이슨 슈워츠 예일대 의대 부교수는 "일의 진행 과정이 엉망이라서 회의가 어색할 것"이라며 "FDA가 통상적인 절차를 고수하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