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구설에…스팩 기업들, 6개월새 시총 90조원 증발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 합병해 미국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최근 6개월 동안 750억달러(약 86조원)가량 증발했다. 스팩 합병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여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증시 스팩 합병기업 137개사(지난 2월 중순까지 합병을 마친 경우)의 시가총액 합산액이 최근 반년간 25%가량 감소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팩 합병기업들의 시가총액 합계액은 지난 2월 3246억달러를 돌파했으나 최근 주가 하락으로 지난달 말에는 2494억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스팩은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회사(SPC)다. 비상장사는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에 우회상장하게 된다. 지난해부터 유명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스팩 설립에 뛰어들며 ‘스팩 열풍’을 일으켰다. 많은 비상장사가 스팩과 ‘짝짓기’를 통해 뉴욕증시에 입성했다. 기업공개(IPO)에 비해 스팩을 활용한 상장 절차가 간소하고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개인들도 스팩에 적잖은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스팩과 합병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이 구설에 휘말리며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가 이어지면서 ‘스팩 투자 주의보’가 켜졌다. 수소트럭회사 니콜라, 전기차 회사 로즈타운 등이 대표 사례다. 이들 기업은 스팩과 합병해 상장한 이후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투자자들이 스팩과 ‘얽힌’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되면서 미 스팩 투자 상장지수펀드(ETF)의 주가는 올 들어 18.7% 하락했다. S&P500, 나스닥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스팩만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미 투자회사 웨스트체스터캐피털의 로이 베런 매니저는 “스팩에 끼었던 거품이 꺼졌다”며 “가능성은 있지만 불확실성도 높은 투자”라고 평가했다.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팩을 예의주시하는 등 규제 우려도 높아진 상황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