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도 없지만 비싸서 못 들어가죠"…고덕동 아파트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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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임대차법 '후폭풍'
고덕 그라시움, 1330가구에 전세 딱 '8건'
대단지 전세 밀려나기 '심화'
임대차법 1년만에 전세 씨 말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지 1년여 만에 전세 물량이 급감하고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통상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 2년차를 맞이하면 전월세 물량이 늘어난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전셋값이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최근엔 사정이 다르다. 전세매물은 임대차법이 반영돼 되레 오르면서 ‘입주 2년차 효과’도 사라졌다. 3일 고덕동 일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고덕그라시움'(4932가구) 아파트 전용 84㎡ 전셋값은 10억원대 중반~12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지난 1월까지만 하더라도 8억~9억원대 전후에 매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2억~3억원 가량 가격이 뛰었다. 이달 입주 2년차를 맞이한 이 단지에서는 전세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매매가도 가파르게 뛰는 중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 2년차를 맞이하면 일시적 전세 물량이 늘면서 값이 떨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은 면적인 전용 59㎡는 7억~8억5000만원, 대형 평수인 113㎡는 13억~14억원 안팎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고덕동 A공인중개사는 “계약갱신권을 쓸 시점이 되자 집주인들이 직접 거주하겠다며 갱신 거절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워낙 대단지라 계약갱신 수혜를 보는 세입자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퇴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셋값이 오르는 가장 큰 요인은 마땅한 집이 없어서다. 대규모 아파트가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2년차가 되면 보통 수백가구의 전세물량이 나온다. 전세가가 낮아지면서 주변의 전셋값까지 끌어내리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집주인들이 직접 거주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셋집에서 쫓겨나는 세입자가 늘지만 매물은 줄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보증금 차이가 워낙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고덕그라시움 전용 84㎡은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보증금 5억원대와 8억원대, 11억원대에 각각 전세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보증금 8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는데, 지난7월 13일과 28일에는 각각 보증금 11억원과 5억80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전셋값이 2배 가까이 널뛰기를 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최고가인 11억원의 전세 매물은 신규 계약, 최저가인 5억8000만원은 갱신 계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5% 이내로 인상해야 하기 때문에 2019년 입주 초기와 비슷한 5억원대에 보증금이 책정된 것이다.
2019년 5월 입주한 금호동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1330가구)도 전세 매물은 8개 정도다. 2019년 10월 입주한 장안동 동대문더퍼스트데시앙(469가구)도 전세 물량이 네 건에 그쳤다. 연말에 입주 2년이 되는 단지도 매물을 찾기 힘들다. 2019년 11월 입주한 월계동 월계센트럴아이파크(859가구)도 전세 매물은 20여개밖에 없다.
그나마도 몇 안 되는 전세 매물이 월세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가능하면 집주인이 입주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늘어난 세금 부담을 전가하기 위해 반전세와 월세로 매물을 내놓고 있다”며 “이 단지도 전세보다 월세 매물이 많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