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곳] 모가디슈에서 신파가 사라진 이유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도 흥행몰이에 성공했고, 평가도 칭찬 일색이다. 장르물로서 '재미있고', 내용이나 짜임새가 '깔끔하다'는 평이다.

그런데 다수의 관객 반응 중 흥미로운 게 있다.

'신파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펑펑 우는 장면이 없다.

좀처럼 눈물을 보기도 어렵다.

한국 대중영화가 달라진 걸까.
◇ 남북, 함께 사선을 넘다
영화의 얼개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했다.

대한민국이 유엔 가입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총력전을 펴던 시기. 소말리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신성 대사(김윤석 분)는 소말리아 대통령 면담을 시도하는 등 고군분투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외교적 기반을 닦아온 북한대사관의 림용수 대사(허준호 분)에게 번번이 선수를 빼앗긴다.

정보원을 두고,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등 신경전도 치열하다. 그런 와중에 수도 모가디슈에 내전이 일어난다.

도시는 정부군과 반군의 총격전으로 파괴되고 치안 부재의 무법천지가 됐다.
반군에 대사관을 공격당한 북한 외교관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 아이들까지 데리고 거리로 나섰지만, 갈 곳이 없다.

이들은 무장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남한 대사관에 문을 두드린다.

안기부에서 파견된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분)은 북한 외교관 가족들 모두 전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 대사를 설득해 북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달러로 매수한 현지 경찰이 철수하자 남북 외교관과 가족들은 더는 관저에 머물 수가 없다.

살기 위해선 반군의 포위망을 뚫고 구조기를 타기 위해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탈출해야만 한다.

책과 모래주머니를 차창에 붙이고 매달아 임시방편의 방탄 조치를 한 차량 4대에 분산 탑승한 이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이때부터 펼쳐지는 장면들이야말로 한국 영화 미증유의 차량 탈주극이다.
◇ 분단과 파국으로 간 내전
남한과 북한의 외교관들이 이역만리 소말리아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생존을 위해 손을 잡는다는 스토리가 공교롭다.

실화임에도 잘 짜인 각본처럼 상징적이다.

참혹한 내전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한반도와 소말리아의 공통점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내전이 분단으로 귀결됐다면, 소말리아에선 파국으로 이어졌다.

소말리아 내전의 역사는 비극 그 자체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소말리아는 1969년 군 장성인 바레가 쿠데타로 집권한 뒤 1인 독재체제를 유지했으나, 1991년 무장 군벌인 아이디드가 반군을 이끌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바레가 축출되고 임시정부가 수립됐지만, 군벌 간 파벌 싸움으로 내전은 다시 격화됐다.

극심한 군벌 대립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소말리아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도 두 손 들고 빠져나왔다.

아직도 소말리아에 통일 정부는 없다.

국민 전체가 굶주림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다수가 해적질로 먹고산다.

소말리아 여성에게 해적은 최고의 신랑감이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된 소말리아 해적들은 "소말리아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것보다 미국 교도소에서 죄수로 사는 것이 삶의 질이 훨씬 높다"고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행금지 국가인 소말리아의 상황이 이러하니 자연히 영화를 찍기는 어렵다.

어린아이들까지 총기를 난사하고 거리엔 시신이 쌓여있는 모가디슈 풍경은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 현지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됐다.
◇ 감정의 온도
실화의 결말을 모르고 영화를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사망자도 있었지만, 탈출은 성공했다.

생사를 함께 넘나든 남북의 외교관들은 구조기를 타고 무사히 케냐에 도착했다.

"나가면 서로 아는 척하면 안 되니, 다들 여기서 인사하시죠."
공항에는 이들의 생환을 환영하는 남북한 당국 관계자들이 나와 있고, 이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자 서로 고개를 돌렸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한 대사의 실제 모델인 강신성(84) 전 대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남북 외교관들은 처음 한국 대사관저에서 만날 때부터 케냐에서 헤어질 때까지 영화보다 훨씬 친밀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교관들이 한국 대사관저에 들어오는 것도 한 대사가 먼저 제안했고, 함께 생활할 때도 갈등은 없었으며, 북측에 전향 제안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보다 훨씬 냉랭했다.

소말리아 모가디슈 탈출극이 벌어졌을 때로부터 정확히 30년이 흘렀다.

분단 1세대가 무대에서 퇴장하는 현실에서 이젠 북한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동포애에 눈물짓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영화에서 신파가 사라진 건 우연이 아니다.

영화의 질적 변화와 감독의 성숙된 역량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남북 간 감정의 온도가 더는 신파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눈물이 말라가는 땅에서 통일의 길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