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좋은 오너는 없다 [이철민의 PEF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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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사모펀드(PEF)가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성공적인 경험을 쌓은 분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투자가 집행된 시점부터 다른 CXO(C레벨 임원)들과 함께 일하며 회사를 성장시키고 성공적으로 엑싯(투자금 회수)을 하는 전체 과정을 주도한, 흔치 않는 경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남양유업 사태를 지켜보며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chulmin.lee@vigpartners.com
그런데 그 분은 다음 직장으로 좀 더 안정적이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중견기업을 선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물으니 몇 년 동안 엑싯이라는 종착점만을 바라보며 숨가쁘게 달려가야 하는 일을 한번 더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시더군요.그보다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경영진을 필요로 하는 중견기업으로 가서, 은퇴하는 시점까지 조금은 가늘고 길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중견기업의 창업자·오너와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만나고 확인하면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그 분이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창업자 회장님 아래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 분과 함께 회사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자리인데, 본인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한 자리이며 창업자와 아들 분의 평판도 아주 좋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문제는 그 뒤로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 분께서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경영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안된 아들 분의 보좌역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창업자 회장님의 견제와 무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직접 들어보니, 자신을 '회사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용병'으로 인식해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입사하기 전에 여러 번 만나 합을 맞추었다고 생각했지만, 입사 첫날 날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본인을 대했다는 것입니다.PEF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창업자·오너들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있었던 남양유업 사태만 봐도 “창업자·오너들에겐 3심(욕심, 의심, 변심)이 있다”는 말을 여실히 증명해주니까요.
성공한 기업의 창업자 혹은 오너들은 자신들의 성공에 기반해 만들어진 회사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PEF의 투자자들도 상대하기 어려운 그런 분들을, 상하 관계로 만나게 되는 전문 경영인들이 상대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창업자·오너가 경영하는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똑같은 문제가 스타트업, 벤쳐기업, 대기업 등에서도 항상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 보다는 창업자·오너들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기대 수준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그 사업을 일으키고 그 자리에 앉게 되는 과정에서 체득한 성공방정식엔 "용병을 의심하고 측근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따라서 커리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착하고 합리적인 창업자·오너'를 찾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최선은 어차피 없으니 차선을 잘 선택하고, 그 선택을 한 이상 그들이 세운 왕국의 일부가 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단거리 달리기’에 해당하는 PEF의 포트폴리오에서 일하는 것은 좋은 대안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PEF는 "기업가치를 올려 돈을 벌고 그 과실은 나누어 갖자. 물론 힘이 들겠지만…"이라는 목표 이외에 다른 아젠다를 가지고 있진 않기 때문입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