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범신라인들이 구축한 해안경제 벨트·동아시아 물류망, 경제특구·일대일로 등 중국 개방경제의 '모범'이었다

역사 산책
(63) 범신라인 공동체의 활동
신라상인들이 불상을 놓고간 저장성 주산군도 보타도의 신라암초.
8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동아지중해 세계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시대, 상업의 시대, 무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대에 당나라는 국제화와 개방을 추진해 신라인과 발해인 외에도 중앙아시아인, 페르시아인, 동남아시아인들이 수도인 장안(시안), 양저우, 광저우 등의 대도시에 집단으로 거주했다. 또한 무역을 중요시해서 오아시스 실크로드와 해양 실크로드를 활용한 동서무역이 활발했다. 본국 신라인들과 동아시아 지역에 거주한 고구려·백제 유민 및 신라인으로 구성된 재당(在唐) 신라인, 일본에 사는 재일 신라인 등은 ‘범신라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라시아 물류망에 적극 참여했다. 신라와 일본을 당나라 중심의 유라시아 물류망 속에 편입시키는 일을 범신라인 상인들이 했다. 각 해역과 항로에 익숙한 범신라인들은 남해항로, 동해남부 항로까지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동아지중해 유통망을 확장하고 활성화시켰다.

신라인들의 뛰어난 조선술

신라인들은 조선술도 뛰어났다. 752년 신라가 일본에 파견한 김태렴이 이끄는 사신단은 700명의 인원이 7척의 배로 갔다. 평균 1척당 100명이 승선한 셈이다. 839년의 기록에는 ‘신라선이 풍파에 강하다’고 했고, 840년의 기록을 보면 대재부가 신라배를 6척이나 보유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상인이나 승려 등 민간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신단조차도 신라배를 활용한 적이 있다. 이 무렵에 일본 승려들이 타고 온 신라배가 교토부 히에이산의 명덕원에 그림으로 남아있다. 쌍 돛대에 활대가 9개, 사각돛과 누각이 있고, 물레를 이용하여 닻을 조정했다. 일본의 견당선들은 4척 정도가 1개 선단을 이뤘는데, 1척당 약 100명에서 150명 남짓 타고 있었다. 길이가 20여m, 폭은 7m 전후이고, 크기는 백수십t 정도로 추정한다. 이에 비춰 신라의 사신선이나 무역선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재당 신라인들의 거주지와 범신라인 공동체의 운영방법

재당신라인들은 해륙교통의 요지인 산둥반도의 석도, 문등, 연운, 소금 제조지인 초주, 양자강 유역의 국제 무역항인 양저우, 저장성의 영파와 황암 등의 항구도시에 ‘신라촌’ ‘신라방’ 등 정착촌을 건설했다. 상인들이나 사신들을 위해 객관인 ‘신라관’, 사찰인 ‘신라원’ 같은 건물도 세웠다. 신라방은 일종의 자치권을 가진 지역인데, 일부는 ‘조계지’로 해석한다. 지금도 저장성 주산(舟山)군도의 보타도(寶陀島) 앞에는 불상을 운반하던 신라상선이 좌초한 ‘신라초(암초)’가 있고, 임해시에는 ‘신라산’, ‘신라서’, 신라인 무덤 같은 흔적들이남아 있다.

이처럼 재당 신라인들은 해안가의 거점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으로 역할분담을 시켰다. 동시에 장보고의 힘을 빌어 군사력까지 동원, 신라 정부와 국적이 다른 신라인의 민간 상인조직들을 연결시켰다(김성훈 교수). 이른바 인적 네트워크, 물류 네트워크, 항로의 일원화를 성공시켜 ‘범신라인 공동체’를 완성했다. 동아시아 세계는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연결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신라와 관계가 악화되면 무역은 물론이고, 견당사를 파견하는 일 조차 어려워서 민간조직인 이들에게 의존했다.

범신라인 공동체의 현재적 의미

현명하고 용감한 신라인들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범신라인 공동체를 이룩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물류망을 장악한 경제부국, 문화선진국이 되었다. 놀랍게도 산둥에서 저장까지 이어지는 재당 신라인들의 해안경제 벨트는 현재 중국의 연해개방 지역에 해당하고, 일부는 경제특구 전략에 중요한 거점이다.중국은 덩샤오핑의 ‘경제특구론과 점선면 전략’, 후진타오의 ‘역사공정’과 ‘해양강국론’을 거쳐 시진핑의 ‘신중화제국주의’와 ‘일대일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책모델들은 역사에서 찾았다. 위기를 겪는 한국이 만약에 ‘신한민족경제권’과 ‘신해양강국론’을 추진한다면 ‘범신라인 공동체’의 활동과 ‘장보고의 청해진 특구’를 모델로 삼으면 어떨까.

√ 기억해주세요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재당 신라인들은 동아시아 해안가의 거점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을 시켰다. 동시에 장보고의 힘을 빌려 군사력까지 동원, 신라 정부와 국적이 다른 신라인의 민간 상인조직을 연결시켰다. 이른바 인적 네트워크, 물류 네트워크, 항로의 일원화를 성공시켜 ‘범신라인 공동체’를 완성했다. 놀랍게도 산둥에서 저장까지 이어지는 재당 신라인들의 해안경제 벨트는 현재 중국의 연해개방 지역에 해당하고, 일부는 경제특구 전략에 중요한 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