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테이퍼링 걱정 끝, 그런데 스태그플레이션?

"9월 테이퍼링은 확실히 물 건너갔다. 오는 11월에도 자산매입 축소 계획을 발표하지 못할 수 있다. 저조한 8월 고용 수치 덕분에 향후 몇 달간 자산매입축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앞으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논쟁이 거세져 시장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

3일(현지시간) 아침 8시 30분 8월 신규고용 수치를 본 월가 관계자의 발언입니다. 노동부가 발표한 8월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는 23만5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월가의 72만 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수십 개 월가 금융사 가운데 가장 적은 수치를 예상했던 TD아메리트레이드의 40만 명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델타 변이의 타격이 예상보다 컸던 겁니다. 실업률은 5.2%로 전월 5.4%보다 소폭 하락했습니다.
수치가 발표되자마자 0.1% 수준 상승세를 보이던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 선물은 약보합세로 돌아섰습니다. 채권 시장에서 10년물 국채 금리는 1.32% 수준에서 순식간에 1.28%로 떨어졌습니다.

다만 내용을 따져보면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고용 감소 충격은 델타 변이 영향이 집중된 레저 및 접객 분야 등 일부에만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7월 41만5000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했던 이 업종은 지난달 신규고용이 없었습니다. 정부 부문 고용도 줄었습니다. 정부는 7월 25만5000명을 고용했지만 8월엔 -8000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 부문 고용은 경기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또 7월 고용이 94만3000명에서 105만3000 명으로 수정되는 등 6, 7월 고용이 13만4000명이 늘어났습니다. 이를 포함하면 시차가 있었을 뿐 거의 4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이에 따라 6~8월 3개월간 평균 월간 신규고용은 75만 명으로 여전히 괜찮은 것이란 평가(크레딧스위스)도 나왔습니다. 모건스탠리는 "8월 신규고용 수치는 너무 낮아서 놀라웠다. 하지만 이런 수치 하락은 대부분 레저 및 접객, 교육 업종에서 생겨났다. 이를 보면 여전히 몇 달 뒤면 고용 성장이 부활할 것처럼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충격적 헤드라인 수치가 나온 탓인지 곧바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난 석 달간 한 달에 평균 75만 명이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고용 회복은 견고하며 강하다. 나의 고용 확대 계획은 잘 실행되고 있다. 임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GDP 규모에서 팬데믹 이전을 넘어선 나라다. 지금은 좋은 직업을 발견하기 좋은 때"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치 자체가 좋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9월 테이퍼링을 발표할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월가의 일치된 시각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델타 변종 변화가 노동시장 약세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명백한 징후가 있다. 8월 재택근무 근로자 수는 경제가 작년 겨울 코로나 확산에서 벗어난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Fed가 다가오는 9월 회의에서 테이퍼를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존 견해를 뒷받침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27일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테이퍼링을 하려면 고용에서 추가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즉 자산매입 축소의 조건인 '상당한(Substantial) 추가 진전'이 인플레이션에서는 충족됐지만, 최대 고용에서는 명확한(Clear) 진전만 있었다고 밝힌 겁니다. 이날 지표를 아무리 좋게 해석한다 해도 추가적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는 9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산매입축소가 결정되지 않는다면 언제 발표될까요?

골드만삭스는 "오늘의 데이터는 테이퍼링 타임라인(골드만은 11월 발표, 12월 실시로 예상)을 약화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여전히 45% 가능성으로 11월에 테이퍼링 일정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면서도 "12월(35%)이나 내년(20%) 가능성도 여전히 델타 변이로 위한 위험 속에서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11월에도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상당합니다. 9월 초인 현재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는 8월 중순(14만 명대. 7일 이동평균 기준)보다 많은 16만 명에 달합니다. 입원자 수와 사망자 수도 비슷합니다. 정점 징후는 있지만, 코로나가 금세 꺾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에선 수업 중단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이날 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의 13.4%가 코로나로 인해 지난달 원격 근무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달 13.2%보다 높아진 것인데, 이 수치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건 코로나 확산세가 극심하던 작년 12월 이후 처음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저조한 신규고용은 9월에도 나타날 수 있다. 일자리에 대한 좋은 소식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남부와 북동부를 휩쓸며 막대한 피해를 낸 허리케인 아이다로 인한 부정적 효과도 지적됩니다.

판테온이코노믹스는 "9월 고용도 약할 것 같다. 10월 고용도 좀 신경이 쓰인다. 파월 의장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오는 10월께면 고용은 다시 증가세를 보일 수 있을 겁니다. MKM파트너스는 "우리는 약한 헤드라인 지표에 너무 많이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델타 확산은 정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급여로 인한 고용시장 왜곡도 이제 사라진다. 학교 개학이 보육 문제를 완화할 것이고 이런 조합은 고용 회복을 다시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치를 담은 10월 고용보고서는 11월 5일에나 공개됩니다. 11월 2~3일 열릴 FOMC에선 확인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11월 FOMC가 열릴 때면 워싱턴DC에서는 부채한도, 그리고 내년 예산안과 관련된 막바지 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부채한도 상향을 놓고 양당이 싸우면서 연방정부가 폐쇄에 들어갈 수도 있을 시기입니다. 이는 경기 회복뿐 아니라, 국채 발행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입니다. FOMC 구성원들이 그런 상황을 지켜본 뒤 12월에 결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이날 뉴욕 증시의 다우 지수는 0.21%, S&P 500지수는 0.03% 하락했고 나스닥은 0.21% 상승했습니다. 약보합세로 출발한 S&P500 지수는 '자산매입축소가 지연될 것'이란 기대 속에 오후에는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장 막판 약보합세로 끝났습니다.

고용지표 발표 직후 잠시 1.28%대로 떨어졌던 금리는 금방 회복되더니 1.32%대로 마감했습니다. 나쁜 지표에도 금리가 올랐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나쁜 고용지표에 또 다른 재정부양책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 나온 겁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어떻게든 경제 살리기에 골몰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 지지율이 41%였는데, 2일 공개된 바이든의 지지율은 43%(NPR조사)에 불과합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델타 변이와 싸우는 데 있어 더 많은 진전이 필요하다"라면서 이와 맞서기 위한 후속 조치를 다음 주에 제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민주당이 추진 중인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안 등 예산안을 의회가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사실 전날 민주당 내 대표적 중도인사인 조 맨친 상원의원은 WSJ 기고를 통해 "3조5000억 달러 예산이 인플레이션과 국가 부채에 미칠 심각한 영향을 우려한다. 지지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맨친은 민주 50, 공화 50으로 나뉜 상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나쁜 8월 고용지표가 나오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 됐습니다.

이날 미 언론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래의 팬데믹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653억 달러 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대규모 인프라법안이나 부양책이 뉴욕 증시에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대규모 인프라 법안은 일부에게는 대규모 증세를 의미합니다. 아니라면 금리 급등을 부를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은 법인세율 인상과 자본소득세 및 개인소득세 인상뿐 아니라 기업의 자사주 매입 및 주주 배당금, 직원보다 너무 높은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 등에 대해서도 과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금리가 오른 이유는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입니다. 이날 고용보고서에서 신규고용 외에 눈에 띈 건 임금 상승률이었습니다. 8월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달보다 0.56% 올라 월가 예상(0.3%)을 두 배가량 웃돈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28%(월가 예상 3.9%) 올랐으며, 지난 3개월 동안 연율로 거의 10%가량 급등했습니다. 고용이 둔화하는 데도 임금이 계속 오르면서 임금 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임금 상승은 지속해서 이어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데(케이스·실러 6월 주택가격지수 기준 연 18.6%) 임금도 연 10%씩 오른다면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일부에선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즉 스태그플레이션을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높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지적해온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은 이날 "고용지표가 매우 실망스러웠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더 많은 얘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전날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추정치를 기존 6.5%에서 2.9%로 절반 이하로 낮췄습니다. 애틀랜타연방은행이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GDP나우의 경우 지난 1일까지 3분기 성장률을 5.3%로 관측했지만 2일 3.7%로 떨어뜨렸습니다. 델타 변이 때문이지만,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 감소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경기 회복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