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강행한 이유
입력
수정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 차례 연기됐던 일본 도쿄올림픽이 취소와 강행사이의 곡예 끝에 개막이 되었다. 7월 23일 막이 오른 도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한차례 연기된 1년 전 상황보다 더 악조건이었다. 개최지인 도쿄의 경우만 해도 하루 확진자가 연일 1천 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최고단계인 ‘감염 폭발 4단계’ 기준을 훌쩍 넘었다. 선수촌 등 곳곳에서 감염자가 잇따라 나왔고, 대부분의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무관중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이후 처음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경기장 밖에서 올림픽 기간 내내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번 올림픽을 “세상에 없던 기이한 올림픽”이라고 평했다.
도쿄올림픽을 강행한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올림픽을 취소하면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 비용(sunk cost)’이라고 한다. 매몰 비용은 경제적 가치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 에너지 등도 포함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지도자들이 정세가 약해졌음에도 중국 대륙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그동안 치른 희생과 노력, 비용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면 그동안의 노력과 비용이 허사가 되어 정책 결정자의 전망이 잘못됐다는 것을 나타내는 핵심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가 총리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올림픽 개최의 강수를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매몰 비용 앞에서는 국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올림픽을 단념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보여주면, 정치인으로서 신뢰감이 높아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스가 총리는 매몰 비용의 오류를 범한 대가로 불과 1년 만에 총리직을 내려놓게 되었다.도쿄올림픽처럼 국가 차원에서 추진했던 적자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콩코드 여객기’이다. 개발 파트너였던 영국과 프랑스 모두 초음속 여객기의 사업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통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오로지 국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도중에 그만뒀다면 지켜보는 경쟁 국가들에게 스스로 항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구나 봐도 객관적 분석의 결과를 외면하는 것은 계속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는 결정을 내리게 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게 만든다. 21세기 최초의 전쟁이자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년간 질질 끈 것도 “이 전쟁에서 너무 많은 병사들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제 와서 중단한다면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은 물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일 자체를 잘못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매몰 비용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누가 봐도 장사를 계속하면 손해 볼 것이 뻔한데 그럼에도 계속 영업을 하는 이유는 뭘까? 특별한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20~30년간 한곳에서 터를 잡고 사업을 한 시간, 에너지, 노력, 애정 등을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가 총리,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끈기 있게 버팀으로써 스스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자신의 선택에 모순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매몰 비용은 예전에 자신이 했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습성, 그리고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그 많은 자원을 낭비한 데 대한 자책감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리는 의사결정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과거의 습성이나 자책감은 썩은 고기라고 생각하고 바로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변화와 생각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은 “당신이 구덩이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매몰 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오늘의 그 일은 매몰 비용의 연장선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기 바란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