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러브콜 뿌리친 '게임 엘리트'…3억 게이머들의 놀이터 만들다

글로벌 CEO - 디스코드 창업자 제이슨 시트론

"디스코드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게이머들의 숭배를 받았다"

게임 엘리트 코스 승승장구
실패에서 찾아낸 기회
페북·트위터와 다른 '틈새 SNS'
올해 초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한 소셜미디어 스타트업에 관심을 보이며 “120억달러(약 14조원)를 낼 테니 회사를 팔라”고 했다. 이에 질세라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에픽게임즈 등도 잇따라 이 스타트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게임용 음성채팅 업체 디스코드 얘기다.

디스코드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이슨 시트론은 가장 통 큰 베팅을 한 MS의 인수 제안마저 거절했다. 시트론은 “우리가 잘나가기 시작하니까 정말 많은 사업 제안이 왔다”며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작고 친밀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이른바 ‘틈새 SNS’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기회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스코드는 최근 핀터레스트 출신인 토머스 마르신코스키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게이머 놀이터’ 개발자 된 CEO

덥수룩한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36세 청년 시트론은 미국 게임·예술 전문 학교인 풀세일대 출신이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풀세일대는 프린스턴리뷰 랭킹에서 ‘미국 최고 게임학교’로 꼽힌다. 비디오게임의 아카데미상 격인 ‘더 게임 어워드’에 매년 이 대학 출신이 30명 이상 후보에 오른다.

시트론도 학교를 졸업한 뒤 몇몇 게임 스타트업에서 비디오게임 개발자로 일했다. 그러다 2009년 소셜게임용 모바일 플랫폼인 오픈파인트를 설립했다. 그의 첫 회사였다. 오픈파인트는 2011년 일본 인터넷 기술 기업 그리(GREE)에 1억400만달러에 팔렸다. 그해 MS가 스카이프를 인수하는 등 SNS에 관심이 치솟으면서 업계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회사를 판 뒤 시트론은 수개월을 그리에서 일했다. 당시 디스코드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공동 창업자인 스태니슬라프 비슈네프스키를 소개받았다. 비슈네프스키는 또 다른 소셜게임 플랫폼을 설립해본 경험이 있는 경력자였다.두 사람은 2013년 자신들이 좋아하는 비디오게임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했고 1년여 만에 태블릿PC 전용 게임 페이츠 포레버를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페이츠 포레버는 게임 유저에게 외면받았다. 그러자 비슈네프스키는 시트론에게 “게임에 함께 담기로 계획한 SNS 개발에 집중해 게이머들의 놀이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디스코드다. 2015년 시트론은 비슈네프스키와 함께 디스코드를 창업했다. 그들의 실패작인 페이츠 포레버를 지원하기 위해 출시한 인스턴트 메신저가 오늘날 1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평가받는 디스코드의 모태인 것이다.

‘공간을 상상하라’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는 “디스코드는 게이머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깨끗하고 안전한 소통 플랫폼’에 대해 상당히 예리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고 극찬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디스코드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게이머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해 입소문만으로 숭배받았다”고 표현했다.출범 이듬해인 2016년 1월 워너미디어(당시 타임워너) 등으로부터 2000만달러를 투자받으며 사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8년엔 MS로부터 엑스박스(Xbox) 라이브 사용자들이 디스코드를 통해 친구 목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파트너십 제안을 받는 등 인지도를 높여갔다. 같은 해 중국 게임사 텐센트 등으로부터 1억50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면서 몸값이 단숨에 20억달러로 뛰었다.

게이머 전용 SNS로 출발했지만 이용자도 다양해졌다. 시트론은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디스코드 플랫폼에서 전날 밤 TV쇼에 대해 감상평을 나누거나 사진 촬영, 외국어 학습 방법을 공유하는 등 다양한 소규모 커뮤니티를 만들어갔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시장 확대 과정에서 위기도 있었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럿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의 폭력 시위가 발생했는데 우파연합이 시위를 모의한 곳이 다름 아닌 디스코드였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사의 집중 포화에 시달려야 했던 디스코드는 100여 개 그룹을 삭제해 몸집을 줄이기로 했다. 가입자 수 등이 성장의 척도인 플랫폼 기업으로서는 뼈아픈 선택이었다.올해 MS 제안을 거절한 이후엔 소니와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또 최근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활용해 사용자의 욕설 메시지 등을 감시하고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업체인 센트로피를 인수했다.

공격적 경영과 혁신을 통해 디스코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2억50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디스코드 활성사용자 수도 월 1억4000만 명 이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디스코드의 지난해 매출은 1억3000만달러로 1년 만에 3배 증가했다. 최근엔 미국 할리우드 배우 겸 감독인 대니 드비토가 출연한 단편영화를 통해 ‘공간을 상상하라(Imagine a Place)’는 첫 브랜드 캠페인까지 시작했다. CNBC는 “디스코드는 이제 (채팅 플랫폼을 뜻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