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도용' 2심 무죄 이끈 율촌…大法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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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vs 로펌납품업체가 구매 기업을 ‘영업비밀 반출’ 혐의로 고발했다. 대명티에스와 오토텍이라는 두 중소기업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두 기업이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명티에스는 자동차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접착제(실러) 도포 장치를 제조하는 회사다. 오토텍은 자동화 설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10회에 걸쳐 대명티에스의 장비를 공급받았다.
"정유량 토출장치 도면 빼가"
대명티에스, 오토텍 고발
설계도면 영업비밀 여부 '쟁점'
1심 "비밀 맞다" 3명 징역 1년
2심에선 무죄로 뒤집혀
"도면에 보안 등급 표시 없어"
상대 비밀관리 소홀 파고들어
문제는 오토텍이 2015년 자체 접착제 도포 장치를 제조하면서 시작됐다. 대명티에스는 오토텍 관계자들이 자사의 영업비밀을 빼갔다며 수사기관에 진정을 넣었고, 재판으로 이어졌다. 1심은 대명티에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오토텍 관계자 3명에게 각각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달 2심에서 판결이 ‘무죄’로 뒤집혔다. 오토텍이 법무법인 율촌을 대리로 내세워 “비밀 관리성을 갖추지 못한 도면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검찰과 치열한 법리 싸움을 펼친 결과다. 기업들은 영업비밀 보안과 관련한 법적 기준을 제시할 이번 소송의 대법원 최종 판결을 주목하고 있다.
‘설계도면’이 불러온 파장
이 사건 피고인들은 모두 오토텍의 실러 장비 자체제작 프로젝트인 ‘S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피고인 남모씨는 전기 컨트롤러 제작, 김모씨는 부품 관련 업무와 특허 출원, 이모씨는 설계 업무를 맡았다. 검찰이 이들에게 ‘영업비밀 반출’ 혐의를 적용한 건 남씨가 가지고 있던 도면 때문이었다.남씨는 S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이전인 2014년 대명티에스 협력업체에서 전기공사 담당자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씨는 전기공사를 위해 회사 측 자료가 필요하다며 관계자에게 자료 공유를 부탁했다. 대명티에스 관계자는 자료를 외장 하드디스크에 담아 넘겨줬는데, 이때 설계도면 파일도 함께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남씨는 대명티에스의 실러 장치 중 정유량 토출 장치(공기, 물, 가스 등의 유량을 조절하는 부품)의 설계도면 파일을 발견했다. 남씨는 설계도면을 자신의 노트북에 옮겨뒀다.이 도면은 S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김씨에게 넘어갔다. 김씨는 2015년 9월부터 오토텍 실러 장비의 특허 출원 업무를 맡고 있었다. 김씨는 S프로젝트에서 전기 장비를 담당한 남씨에게 참고할 자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남씨는 가지고 있던 대명티에스의 장비 도면을 김씨에게 넘겼다. 김씨는 이 도면을 제3의 인물에게 맡겨 3D(3차원)화했고, 이를 설계업무를 담당하는 이씨에게 넘겼다. 이씨 역시 이 자료를 참고해 오토텍의 실러 장비를 제조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명티에스는 피고인들이 자사의 영업비밀인 정유량 토출 장치 도면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수사기관에 진정을 넣었다. 대명티에스는 “자체 실러 장비를 개발하는 데 약 1년간 4억원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은 해당 진정을 받아들였고,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다. 오토텍 측은 “대명티에스의 기술을 베낀 것이 아니라 오래된 기술을 참고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1심에서 징역 1년…法 “영업비밀 맞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각각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해당 설계도면을 대명티에스 측의 영업비밀로 인정한 것이다. 이를 인정받기 위해선 ‘비공개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 관리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유출된 설계도면은 어떤 간행물에도 실린 적 없는 대명티에스 고유 자료고 △대명티에스가 실러 장비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이 70% 가까이 되는 업체라는 점 △영업비밀보호 서약서나 보안교육을 통해 자료를 비밀로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당시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대명티에스가 영업비밀 자료라고 주장하는 도면은 동종 업계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구원투수 율촌…2심 ‘무죄’로 뒤집어
오토텍 측은 2심부터 법무법인 율촌의 이다우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 황정훈 변호사(37기)를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이 변호사는 업무 총괄과 법정서 변론을 맡았으며, 변리사 자격을 보유한 황 변호사는 변론의 논리를 개발했다. 최석운·조세윤 변리사도 방대한 양의 판례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했다.이들은 설계도면을 ‘영업비밀’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법정에서 기존 판례를 들어 기업이 비밀 관리에 소홀했다면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그는 “대명티에스 보안규정에 따르면 공개 불가 자료에는 보안 등급 및 비밀표시를 해야 하지만 이 사건 도면에는 이 같은 표시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료는 대명티에스 관계자의 개인용 외장 하드디스크에 저장돼 있었다”며 “당시 회사 서버에서 관리되지도 않았고 별도 보안관리자도 지정돼 있지 않아 비밀 관리성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명티에스가 자료에 비밀표시를 하고 외부 반출 과정을 통제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2심 재판부는 이런 율촌의 논리를 적극 인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도면이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밀 관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이상 이 사건 도면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았던 3명의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황 변호사는 “법원이 비밀 관리성을 무분별하게 인정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기준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들이 재판에서 비밀 관리성이 있었다고 증명하려면 그에 걸맞은 철저한 보안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심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