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중립 달성, '어떻게'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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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신기술 나오게 규제 풀고지난 8월 초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한 후 많은 논란이 있다. 원전의 역할부터 수소환원제철공정 같은 새로운 기술의 실현 여부 등 다양하다. 30년 후 미래 상황이라 가변성이 있지만 국제 사회에 할 약속인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방안이 도출되길 기대한다.
민간투자 우선, 공기업 기능 축소
에너지 세제 개편도 착수해야
문재도 <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에너지밸리포럼 대표 >
얼마 전 유럽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탄소국경세 시행을 포함한 55개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구체적 실천 방안이 나와야 경제 주체들도 예측 가능성을 갖고 대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도 시급히 실행할 세 가지 과제가 있다.우선 새로운 분야의 투자를 촉진하고 사업 전환을 유도할 에너지 시장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과 동시에 기존 화석에너지산업의 구조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정부가 모두 조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과거 국제 유가가 낮을 땐 국내 가격과의 차액만큼 기금을 거둬 천연가스 공급망 확충, 효율 향상 등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부 재정 여건상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는 전력망 같은 기간 인프라나 사업성 확보에서 시간이 걸리는 전략 부문에 주력하고, 새로운 기술이 이른 시일 내 사업화되도록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손톱 밑 가시 뽑기’나 ‘규제 샌드박스’ 같은 부분적 규제 완화가 아니라 시장 운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며, 에너지 요금의 규제 완화와 투명성 제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금까지 주요 에너지는 공기업이 중심이 돼 수급과 가격 안정을 가져왔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나 수소, 에너지 효율 등 분야는 새로운 기술이 사업화되고 민간의 투자 의지도 강하다. 이런 분야에 공기업도 부대사업이란 명목으로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민간의 역량이 부족할 땐 공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나 지금은 민간의 투자를 원활하게 하는 보완적 기능을 수행함이 바람직하다. 민간 기업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인수, 합병, 분할 등 변신을 거듭하듯 경제 상황이 바뀌면 공기업도 변화해야 한다. 현 공기업 경영 평가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 단기적인 경영 성적을 매기는 일에 한정된다. 에너지 전환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과거 정부가 바뀔 때 시행했던 ‘공기업 경영진단’을 추진해 에너지 공기업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 에너지 세제 개편이 준비돼야 한다. 현재 에너지세는 세수 확보, 환경 오염 등을 고려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휘발유나 경유 같은 수송 에너지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대표적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에너지 세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탄소세 도입 주장이 정치권에서 대두됐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고 있는 마당에 탄소세까지 추가로 부과된다면 기업에 부담이 가중되며 이중과세 논란까지 제기될 수 있다. 올 11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결과에 따라 탄소중립에 필요한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기하면서 국제 사회와 조화되는 세제 개편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무엇을, 어떻게, 왜’에서 ‘어떻게’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탄소중립이란 목표로 가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방법론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재생에너지 비중 몇%’와 같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진정성을 갖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실행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반대와 논란이 야기되겠지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지금의 논의가 탁상공론에 머물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