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안경에게, 권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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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게

권오범너는 내 마음의 창
네가 없다면 나는 청맹과니
컴퓨터가 무슨 소용이랴
매일 월담하는 싱싱한 언어들마저
너 없이는 그림의 떡이라서
공연히 씀벅거릴 뿐
물안개 헤살 벗어날 수가 없다

남은 생 다정하게
어딜 가나 함께 하리니
행여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잠자리에 들 땐 반드시 네 방에서
다리 포개고 격식 갖춰 누워야 한다
한뎃잠은 매우 위험하니까

* 헤살: 짓궂게 방해함.[태헌의 한역]
致眼鏡(치안경)

汝卽吾心窓(여즉오심창)
無汝吾靑盲(무여오청맹)
活語溢電惱(활어일전뇌)
無汝畵中餦(무여화중장)
刮眼亦徒勞(괄안역도로)
難脫水霧妨(난탈수무방)

餘生相傾心(여생상경심)
行處恒成雙(행처항성쌍)
意外或偶然(의외혹우연)
只願無中傷(지원무중상)夜深吾欲眠(야심오욕면)
汝應在汝房(여응재여방)
交脚從容臥(교각종용와)
外宿甚危慌(외숙심위황)

[주석]
* 致(치) : ~에게. / 眼鏡(안경) : 안경.
汝(여) : 너. / 卽(즉) : 즉, 곧, 바로 ~이다. / 吾(오) : 나. / 心窓(심창) : 마음의 창.
無汝(무여) : 네가 없다, 네가 없다면. / 靑盲(청맹) : 청맹과니.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런 사람.
活語(활어) : 살아있는 말. 원시의 “싱싱한 언어”를 한역한 말이다. / 溢(일) : 넘치다. / 電惱(전뇌) : 컴퓨터.
畵中餦(화중장) : 그림 속의 떡. 화중지병(畵中之餠). 압운 관계로 ‘餠’의 대용어로 ‘餦’을 사용하였다. ‘餦’은 ‘산자’ 외에도 ‘유과’, ‘떡’ 등의 의미가 있는 글자이다.
刮眼(괄안) : 눈을 비비다, 눈을 크게 뜨다. / 亦(역) : 또한, 역시. / 徒勞(도로) : 보람 없이 애쓰다, 헛되이 수고하다.
難脫(난탈) : ~을 벗어나기 어렵다, 벗어날 수 없다. / 水霧妨(수무방) : 물안개의 방해.
餘生(여생) : 남은 생. / 相傾心(상경심) : 서로 마음을 기울이다. 원시의 “다정하게”를 다소 의역한 표현이다.
行處(행처) : 가는 곳, 가는 곳마다. 원시의 “어딜 가나”를 한역한 표현이다. / 恒成雙(항성쌍) : 언제나 짝이 되다. 원시의 “함께 하다”를 다소 의역한 표현이다.
意外(의외) : 의외, 뜻밖. / 或(혹) : 혹, 혹시. / 偶然(우연) 우연. ※ 이 구절은 원시의 “행여”라는 시어를 한 구절로 늘려 표현한 말이다.
只願(지원) : 다만 ~하기를 원하다, 다만 ~하기를 바라다. / 無(무) : ~이 없다. / 中傷(중상) : 상처를 입다, 다치다.
夜深(야심) : 밤이 깊다. / 吾欲眠(오욕면) : 내가 자려고 하다. ※ 이 구절은 원시의 “잠자리에 들 땐”을 역자가 나름대로 풀어 한역한 표현이다.
應(응) : 응당, 반드시. / 在汝房(재여방) : 너의 방에서, 너의 방에 있다. ※ 이 구절은 원시의 “반드시 네 방에서”를 한역한 표현이다.
交脚(교각) 다리를 겹치다, 다리를 포개다. / 從容(종용) : 조용하다, 조용히. 원시의 “격식 갖춰”를 역자가 임의로 고쳐 한역한 말이다. / 臥(와) : 눕다.
外宿(외숙) : 밖에서 잠을 자다, 밖에서 자는 잠. 자기 집 이외의 다른 곳에서 잔다는 뜻이다. / 甚(심) : 심히, 매우. / 危慌(위황) : 위태롭고 황망하다, 위험하고 황망하다.

[한역의 직역]
안경에게너는 내 마음의 창
네가 없다면 나는 청맹과니
싱싱한 언어가 컴퓨터에 넘쳐도
네가 없다면 그림의 떡이라서
눈 비비는 것도 헛된 수고
물안개의 방해 벗어날 수가 없다

남은 생 서로 맘 기울이며
가는 곳마다 언제나 짝이 되리니
뜻밖이든 혹 우연이든
그저 다치는 일이 없기만 바랄뿐

밤 깊어 내가 자려고 하면
너는 응당 네 방에서
다리 포개고 조용히 누워야지
밖에서 자는 잠 매우 위험하니까

[한역 노트]
이 시는 전체가 안경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었지만, 궁극으로는 안경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시로 이해된다. 역자가 보기에 이 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시구 하나는 바로 “네가 없다면 나는 청맹과니”이다. 안경이 없어 내가 청맹과니가 되면, “싱싱한 언어들”의 보고인 컴퓨터는 결국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게 되고, 안경이 없는 눈은 아무리 비비고 새로 떠도 여전히 전혀 소용이 없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경의 ‘부재(不在)’가 시인이 원하는 일상의 정전(停電)인 만큼 안경에 대한 염원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남은 생 동안 함께 하자는 것과 다치지 말라는 것이 바로 시인의 염원인데, 일견 말은 평범해보여도 뜻은 사뭇 비장하다. 거기에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불편 내지 슬픔 같은 것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언젠가 안경을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고 나서 불편 내지 슬픔을 한량없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염원으로 시행(詩行)을 끝까지 끌고 갔을 것으로 보인다. 안경에게 이 외에 달리 또 무슨 염원이 있을 수 있겠는가만……

안경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반려 물건’이 된 사람에게는 안경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할 듯하다. 그리하여 안경을 찾을 때 종종 “내 눈이 어디 있지?”라고 하는 말이 그저 재치 있는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일부를 불편하지 않게 하거나 덜 불편하게 해주는 물건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 ‘존재’는 정말 너무도 많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 가운데는 대체가 가능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이 대체 불가의 존재라면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해 감사 정도가 아니라 경의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인에게 안경은 분명 대체 불가의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역자는 시인이 안경을 쓰게 된 원인이 시력 때문인지 노안 때문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시를 통해서도 이를 추정할 수가 없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역자는 이 시를 대하고서,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생겨나는 노화현상으로 노안이 오고 귀가 어두워지는 것에 대해, 나이가 들면 큰 글씨만 보고 큰 소리만 들으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떠벌렸던 젊은 날의 역자를 무던히도 반성하게 되었다. 그 말을 역자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만하기 짝이 없었던 것은 틀림없다.

사람에 따라 눈이나 귀의 노화가 빨리 진행될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노화와 같은 불편을 겪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타인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덜 겪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누가 감히 비판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그럴 수가 있겠는가? ‘하늘의 뜻’ 운운해가며 돋보기나 보청기 끼는 것을 오만하게도 순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여겼던 역자 역시 그 ‘순리에 역행하여’ 필요할 때마다 돋보기를 끼기 시작한지 이제 3년째가 되었다. 시인처럼 안경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시 한 수 헌정하고 속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역자는 2연 13행으로 구성된 원시를 14구의 오언고시로 한역하였다. 내용에 따라 한역시를 3단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전체를 묶어 이해해도 불편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역시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盲(맹)’·‘餦(장)’·‘妨(방)’·‘雙(쌍)’·‘傷(상)’·房(방)’·‘慌(황)’이다.

2021. 9. 7.<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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