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의 '200만명 신용사면' 지시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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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코로나로 인한 연체자 200여만 명이 빠짐없이 혜택받을 수 있도록 신용사면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금융의 역할이 크니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임해 달라”고 특별히 강조했다는 게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이다.
지난 7월 ‘연체자 신용회복 지원 방안’ 마련을 지시할 때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금융계 반응이다. 대통령의 압박에 전 금융권이 모여 ‘코로나19 관련 개인 신용회복 지원 자율협약’을 내놓은 게 한달 전이다. 당시 2000만원 이하 연체자가 올 연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연체 이력을 면제하는 등의 지원안이 발표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의 공개 지시는 발언 강도로 볼 때 훨씬 더 파격적 지원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아무리 위기 국면이라지만 신용 사면도 연체자의 성실도와 상환 현황 등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게 수십 년간 우리가 매진해온 ‘선진 신용사회’라는 대전제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대통령 지시는 관치금융이자 정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금융업이 복지나 사회사업이 아닌 이상, 그런 역할은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더구나 고 위원장이 취임식에서 금융위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급증한 가계부채의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대통령 지시로 금융수장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더욱 걱정스런 것은 금융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무수히 보여온 전력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언급해 금융계를 당혹하게 했다. 이후 실제로 고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사례가 여러 시중은행에서 목격됐다.
코로나 위기 속에 절박한 이들을 외면하자는 것이냐고 주장한다면 지독한 편견이자 흑백논리다. 성실하게 이자를 갚고 신용을 지켜온 이들이 양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법이 모색돼야 한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떼법이 횡행하는 마당에 공개적으로 무조건 신용사면 메시지를 내는 것은 선을 한참 넘은 것이다. 금융을 공공기관처럼 취급하고, 포퓰리즘의 도구쯤으로 여겨서는 선진 금융사회는 불가능하다.
지난 7월 ‘연체자 신용회복 지원 방안’ 마련을 지시할 때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금융계 반응이다. 대통령의 압박에 전 금융권이 모여 ‘코로나19 관련 개인 신용회복 지원 자율협약’을 내놓은 게 한달 전이다. 당시 2000만원 이하 연체자가 올 연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연체 이력을 면제하는 등의 지원안이 발표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의 공개 지시는 발언 강도로 볼 때 훨씬 더 파격적 지원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아무리 위기 국면이라지만 신용 사면도 연체자의 성실도와 상환 현황 등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게 수십 년간 우리가 매진해온 ‘선진 신용사회’라는 대전제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대통령 지시는 관치금융이자 정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금융업이 복지나 사회사업이 아닌 이상, 그런 역할은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더구나 고 위원장이 취임식에서 금융위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급증한 가계부채의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대통령 지시로 금융수장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더욱 걱정스런 것은 금융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무수히 보여온 전력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언급해 금융계를 당혹하게 했다. 이후 실제로 고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사례가 여러 시중은행에서 목격됐다.
코로나 위기 속에 절박한 이들을 외면하자는 것이냐고 주장한다면 지독한 편견이자 흑백논리다. 성실하게 이자를 갚고 신용을 지켜온 이들이 양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법이 모색돼야 한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떼법이 횡행하는 마당에 공개적으로 무조건 신용사면 메시지를 내는 것은 선을 한참 넘은 것이다. 금융을 공공기관처럼 취급하고, 포퓰리즘의 도구쯤으로 여겨서는 선진 금융사회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