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창일 주일대사, 日 '재계총리' 만났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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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최대 경제단체 도쿠라 회장 면담강창일 주일 한국대사(사진 왼쪽)가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과 회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 악화를 이유로 만남 자체를 거부하며 강 대사를 홀대하는 것과 달리 양국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잘 아는 재계는 적절한 예우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일대사 '홀대' 日정치권과 달리 재계는 예우
한일 경제협력 중요성 배려한듯
강대사 "수출규제 철회·비즈니스트랙 재개" 요청
도쿠라 회장 "한국 출장 300번" 친근감 표시
7일 일본 외교소식통과 재계에 따르면 강창일 대사는 지난 7월27일 도쿄 지요다구 오테마치 게이단렌회관을 방문해 도쿠라 회장을 면담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에서는 이용환 상무관이, 게이단렌 측에서는 구보타 마사카즈 사무총장이 배석했다.
◆강 대사 "백신여권 목소리 내달라"
강 대사와 도쿠라 회장은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불발된 것을 아쉬워하며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두 나라가 조속히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 얼어붙은 정치 문제와 별개로 양국의 경제협력 관계가 긴밀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점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강 대사는 특히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대해 "일본 기업도 피해를 보고 있지 않느냐"며 게이단렌이 규제 철회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나면 사업 목적의 단기 방문(비즈니스트랙) 재개와 한일 백신여권 및 트레블 버블(방역 우수국가끼리 여행객에게 격리를 면제하는 제도) 도입을 일본 정부에 강력히 건의해 달라"고 말했다. 도쿠라 회장은 "한국 출장을 300번 가량 다녀왔다"며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친근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쿠라 회장은 반도체 핵심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폴리이미드를 생산하는 스미토모화학의 회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고객사와 협의를 위해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한국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강 대사에게 한일경제인회의 부회장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전 총리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친근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쿠라 회장은 또 "한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PTP)에도 참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CPPTP는 일본이 주도하는 지역 경제협력체다.
이날 면담은 도쿠라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려는 강 대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주일대사관이 면담을 타진하자 게이단렌이 즉각 일정을 조율하는 등 강 대사를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치권이 강 대사를 의도적으로 홀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강 대사는 지난 1월22일 부임했지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해법을 제시할 때까지 면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전임 남관표 대사는 부임 나흘만에 일본 외무상을 면담하고, 12일 만에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만났다.
◆면담 후 스미토모化 韓 투자·비즈니스트랙 재개 건의
강 대사와 도쿠라 회장의 면담은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면담이 있은 지 한 달 후인 지난달 31일 스미토모화학은 100억엔(약 1054억원) 이상을 투자해 한국에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오사카 공장에서만 생산하던 ArF 포토레지스트를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은 처음이다.
투자 규모 역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이후 관련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로는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스미토모화학 관계자는 한국경제신문에 "오사카공장 한 곳에서만 생산하는 것은 사업안정성 측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한국에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도쿠라 회장은 도쿄패럴림픽 폐막 하루 뒤인 전날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예방해 백신여권을 보유한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하는 등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완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도쿠라 회장은 "사업목적의 왕래가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면 일본 기업의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에 적폐로 몰려 위상이 추락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달리 게이단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게이단렌 회장은 히타치, 파나소닉, 일본제철, NTT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회장 및 사장 19명으로 구성된 부회장단을 이끈다.
‘재계 총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게이단렌 회장은 경제 정책 전반에 폭넓게 관여한다. 게이단렌 회장은 일본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 고정 멤버다.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일본의 경제, 재정, 산업, 과학기술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 정책으로 입안시키는 역할을 한다.13대 회장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도레이 회장(재임 기간 2014년 6월~2018년 5월)은 경제재정자문회의와 미래투자회의,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 등 아베 신조 전 정부의 핵심 정책과 관련한 자문기구의 민간위원을 도맡으면서 게이단렌 주장을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했다. 전임 나카니시 히타치 회장도 디지털화와 탈석탄화,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등과 관련한 게이단렌 주장을 정부 정책에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